<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볼레스와프 프루스 Bolesław Prus | |
출생 | 1847년 8월 20일 |
폴란드 입헌왕국 흐루비에슈프 | |
사망 | 1912년 5월 19일 (향년 64세) |
폴란드 입헌왕국 바르샤바 | |
국적 | [[폴란드|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소설가 |
학력 | 바르샤바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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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 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가로 손꼽히는 인물로 대표작은 '인형'과 '성채' 등이 있다.2. 생애
그의 본명은 알렉산더 그오바츠키(Alexander Glowacki)로 프루스는 그의 집안 문장 이름이다. 그가 3살이던 1850년에는 아버지가 사망하고 1856년에는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친척 집에서 생활하였다. 1863년 1월 봉기에 참여하여 루블린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었으나, 친척들이 그의 출생증명서를 위조하여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출소되었다.볼레스와프 프루스는 그의 필명이다. 그는 바르샤바 대학교의 물리-수학부에 입학하였으나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을 중퇴한 이후, 가정교사나 야금공장 노동자 등으로 전전하며 살았는데, 작가로 성공하기 이전에는 상류 계층 사람들은 그가 공장 노동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곤 하였고, 야금공장 노동자들은 그를 책벌레라며 따돌리던 상황이라 실명을 함부로 사용하기 애매했기 때문이다.
3. 작품 서술 배경
프루스는 19세기 러시아 제국 영토 내 폴란드인 작가로 바르샤바 실증주의(pozytywizm warszawski)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폴란드 분할 이후 독립을 상실한 폴란드인들은 11월 봉기와 1848년 대폴란드 봉기, 1월 봉기 등을 통해 다시금 독립을 시도하지만 그 때마다 거듭 진압당했고 이는 폴란드인 엘리트 층에 상당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후 폴란드 지식인들 중 일부가 '경제와 문화 발전이 독립의 필수조건'라는 견해을 가지고 모여, 폴란드 귀족들의 사르마티즘 그리고 가톨릭 교조주의를 비판, 개혁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는데 이러한 의견이나 견해, 사상 등을 일컫어 바르샤바 실증주의라고 부른다. 한 편 당시 러시아 제국의 엄격한 검열과 통제 때문에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폴란드 지식인들은 과학과 경제적 발전에서 희망을 찾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과정에서 진화론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도 더해져서 이들은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보고 구성원 하나하나의 역할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1월 봉기 이전 아담 미츠키에비치 같은 폴란드 낭만주의 작가들은 폴란드의 멸망이 폴란드와 이웃한 프로이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탐욕과 배신을 원인으로 보는 반면, 실증주의 작가들은 폴란드 대귀족들의 방만함과 나태, 사치와 반지성주의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독립에 앞서 먼저 국민 계몽을 주장하게 된다. 볼레스와프는 한 편으로는 폴란드 민족주의 시인이자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추종자이지만, 한 편으로는 낭만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인 실증주의의 영향을 받아, 19세기 당시 사회 문제를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