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05:54:21

부활절 일요일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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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러퍼트 일가의 집 모습

1. 개요2. 사건 정황3. 검거4. 범인 제임스 러퍼트5. 판결


Easter Sunday Massacre

1. 개요

1975년 3월 30일 미국 오하이오주 해밀턴(Hamilton)시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으로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발생 시기가 부활절이었기 때문에 이 명칭이 사용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적으로 보도되었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며 한국에서도 외신을 통해 소수 보도되기도 했다.

2. 사건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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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피해자인 러퍼트 일가의 모습
(아래) 사건 당시 피해자들의 위치
1975년 3월 30일 부활절 일요일, 러퍼트의 형제 레너드 러퍼트 주니어와 그의 아내 앨마는 4세에서 17세 사이의 여덟 자녀를 데리고 해밀턴시 마이너 애비뉴(Minor Avenue) 635번지에 위치한 집에서 부활절 저녁 식사를 즐겼으며 제임스 러퍼트는 위층에 머물면서 밤새 술을 마시며 잠을 잤고, 다른 가족들은 앞 잔디밭에서 부활절 달걀 사냥을 즐겼다.

그러나 오후 4시경 제임스는 잠에서 깨어나서 357매그넘22 롱 라이플[1]탄을 장전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간 사이 그의 어머니 채리티는 레너드 주니어와 앨마와 함께 부엌에서 샌드위치[2]를 준비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아이들은 거실에서 놀고 있던 사이 부엌에서 레너드 주니어의 머리에 총을 갈겼고 형수 앨마에게도 사격을 가해 절명케 한 뒤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달려들자 머리에 한 번, 가슴에 두 번 총을 쏜 뒤 데이비드(11세), 테레사(9세), 캐롤(13세)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그 뒤 거실로 들어서자 남은 조카들에게까지[3] 한 명씩 사격을 가했으며 14분 후 모두 사망한 것으로 사건은 끝났다.

3시간 뒤 제임스는 마침내 경찰에 전화를 걸어 '총격 사건이 있었다'며 자수했고 현관 안쪽에서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3. 검거

결국 제임스 러퍼트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11건의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경찰에 검거된 후에도 진술을 거부했고 조현병이 있다고 주장하는 등 매우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 범죄 현장을 수사한 결과 사망한 피해자의 혈흔이 검출되어 마루판을 통해 지하실로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으며 러퍼트는 총 16발을 발사했으며 4개의 무기는 모두 현장에서 회수 조치되었다.

4. 범인 제임스 러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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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어번 러퍼트(James Urban Ruppert, 1934년 3월 29일 ~ 2022년 6월 4일)는 오하이오주 출신이며 그의 집안은 상당히 막장 그 자체였다. 그의 어머니 채러티 러퍼트(Charity Ruppert)는 '너는 딸을 둘째 아이로 낳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들을 혐오했고 그의 아버지 레너드 러퍼트(Leonard Ruppert)역시 폭력적이었고 두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온화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끔찍히 증오했다. 그의 아버지는 1946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형 레너드 러퍼트 주니어는 제임스를 냉대하는 등 적대적으로 대했으며 16세에 가족들의 괴롭힘을 당하지 못하고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했으나 그는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성인이 되어서는 체중이 135파운드였으며 그는 독서를 좋아하는데다가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알려졌으나 전과 기록도 없었다.

그래도 가족들을 동경했는지 그는 형의 성공적인 직업을 원했으며 대학을 중퇴한 후 제도사로 훈련을 받았지만 무일푼인데다가 미혼이었고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살았다. 그의 형인 레너드는 전기 공학 학위를 받았고 제임스의 여자 친구 중 한 명과 결혼했으며 페어필드(Fairfield)시에 거주하며 자녀를 두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 채리티는 제임스가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 한 데다가 끊임없이 술을 마시는 것이 보기 싫어 집에서 쫓아내겠다고 협박했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어머니와 형에게 새 사업을 위해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고 가족들은 그를 믿어 보겠다고 하며 돈을 빌렸고 그 결과 주식시장에 뛰어들게 되나 1973년과 1974년 사이 미국 주식 시장의 붕괴로 재산을 많이 잃게 되자 어머니와 형제에게 빚을 졌다.

하지만 사건 발생 한 달 전 탄약을 구입하면서 무기용 소음기를 구매한 뒤 그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그의 행동이 악화되었고 그의 22번째 생일이던 1975년 3월 29일, 당시 목격자들은 그가 해밀턴의 그레이트 마이애미 강변에서 깡통을 쏘는 표적 연습을 벌리는 것을 보기도 했다.

제임스는 매일 밤마다 외출하여 19번 홀 칵테일 라운지에서 바텐더인 28세의 완다 비숍(Wanda Bishop)에게 '내 어머니가 집을 나가달라고 협박을 했고 거기에 좌절감을 느꼈다.'며 뒤이어 '더 이상 가족들과는 친해질 수 없다'고 토로했다. 사건 후 비숍은 '러퍼트는 그의 어머니가 그가 일주일에 맥주를 살 수 있다면 빚을 갚아'라고 비난했고 러퍼트는 그날 밤 9시에 술집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비숍이 그에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물었을 때 그는 "아니요, 아직은 아닙니다"라고 밝혔고 제임스는 새벽 2시 30분에 문을 닫을 때까지 술집에 머물렀다.

5. 판결

제임스 러퍼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015년에 가석방을 신청하였지만 거절되었고 2022년 6월 4일 감옥에서 88세로 사망했다.


[1] 일명 투투탄. 후에 로널드 레이건 암살 미수 사건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때 사용된 탄약이다.[2] 슬로피 조(Sloppy Joe).[3] 앤(12세), 레너드(17세), 마이클(16세), 토마스(15세), 존(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