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도읍인 낙양의 궁전이다.[1]
남궁(후한)이 광무제 때 낙양에 정도하면서 이미 기존에 있던 건물을 개축했거나 신축했던 것에 반해, 북궁은 명제(후한) 영평(永平) 3(60)년 여름에 조영을 개시하여 영평 8(65)년 10월에 완공되었다.
면적은 남북 약 1,500m, 동서 약 1,200m로서 남북보다 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으며, 중동문대가(中東門大街) 이북, 진문대가(津門大街) 이동, 곡문대가(穀門大街) 이서 지역에 위치하며 낙양성 북벽에 접근하고 있다.
사료에 나타난 북궁 소재 전각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덕양전(德陽殿) - 북궁의 정전으로 그 규모는 동서 37장 4척, 남북 7장의 건물이었다. 진나라의 아방궁(阿房宮)이나 전한시대의 미앙궁(未央宮)에 비해 궁전 자체의 면적은 넓지 않았지만, 그 마당[庭]의 너비는대단히 넓어 1만인을 수용할 수가 있었을 정도이었으며, 당연히 북궁에서 가장 존귀한 궁전이었다고 한다. 정월 원단에 공경백관들에게 조하를 받던 장소이다.
성찬문(盛饌門)
장덕전(章德殿)
증희관(增喜觀)
백호관(白虎觀) - 장제(후한) 때 백호관 회의가 열린 곳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백호통의이다.
수안전(壽安殿
온명전(溫明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