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분닥세인트
1. 영화의 주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램페이지 시리즈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주인공들은 살인의 수단으로 심판해서 잘못됐다고도 볼 수 있지만 법의 한계앞에서 무기력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들이라도 있으면'하고 누군가는 또 이런 심판에 통쾌함을 느끼는데 영화는 바로 이 점을 역설한다고 볼 수도 있으며 그 외에도 후술하겠지만 착한 사람들의 무관심에 관해서도 역설하고있다. 주인공들을 위협했던 킬러가 사실은 주인공들과 같은 소명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은 서로 생각도 같고 같은 것을 추구하는 누군가가 범죄로인해 서로 상처를 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적 장치이며 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도와주는 것 역시 착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적극적 자세로 나와야 함을 보여주는 장치[1]2. 옹호/비판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래딧에서 시민들의 반응이 엇갈리기도 했는데 이들을 옹호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간의 의견이다. 그런데 엔딩크래딧에서 나오는 범죄자에대한 단죄에 관에서 시민들이 의견차가 생기는건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충분히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데 이것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2.1. 옹호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없는 힘은 폭력이다. - 블레즈 파스칼(팡세)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것은 누가 폭력을 정당화 하느냐고 묻는게 아닌 착한사람들의 무관심이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어야 하는게 아닌가라고 묻고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그저 악을 처단 해야한다는 것을 신의 계시처럼 느껴서 행동한 것이지 모작품의 주인공처럼 신처럼 추앙받겠다던지 아니면 자신들이 정의라던지 자기들만의 어떤 조직을 세우겠다던지 하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것도 아니며 나름 조사를 해서 명백한 범죄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죽였다. 그리고 죽이면서도 꼭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이들이 정말로 나쁜마음을 먹고 범죄자를 죽인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범죄자들을 죽인후에 기도를 해주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해당 작품의 야가미라이토와 이들의 차이점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이들은 범죄의 우두머리는 잡히면 보석금내고 풀려나기 일수인 현실에 관에서 항변한 것에 좀더 가깝다.
주인공들은 살인을 했지만 그들이 죽인것은 또다른 폭력과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들이며 법은 이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을 외면했다. 이들의 살인은 정당화 할 수는 없지만 영화는또 여기서 이렇게 묻고있다.
정말로 악한것은 착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아닐까?
주인공들은 정당방위로 풀려나서 영웅대접을 받았다. 뜻하지않게 하지만 영웅대접을 받게된대에는 무관심한 현실도 있었고 그들같은 사람을 정당방위를 영웅시되는 사회의 이면에는 언제나 목숨을 위협받는 불상한 사람들도 많다는 점에 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이들을 단순한 영웅을 넘어 성인이라 부르는데 이는 그만큼 착한 사람들의 무관심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억압돼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마지막에 이들이 재판장에서 하는 외침은 마치 우리를 위협하는 폭력배의 뒤에 마피아가 있었는데 당신들은 무엇을 하였나며 울분을 터트리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진짜로 이런대사를 한건 아니지만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었다.
이쯤되면 어떤이의 말이 떠오르게 만든다.
만약 당신으로 인해서 누군가의 생명이 보장 받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 샘 칠더스[2]
생각해보자, 이들이 범죄자를 죽임으로서 또다른 누군가가 산다면? 이것도 지독한 모순일수도 있지만 이것또한 현실이 아닌가? 영화는 주인공들을 테러리스트가 되어 선동하는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서 결국엔 이런 무관심으로 인한 폭력은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수 있다고 비판한다.
영화속에서 법정에서 선동하듯이 말하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성가처럼 흘러나오는 배경음악 그리고 마지막 이들의 기도를 하며 단죄를 하는 장면은 결코 외면하지 않겠다는 신념하나만큼은 진짜이면서 이들도 결국엔 선량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며 결국엔 이들도 선을 넘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믿음과 신념 그리고 주변에 관에서 만큼은 결코 흔들리거나 외면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때 두형제의 손에 적힌 Veritas와 Aequitas도 두 형제가 그래도 정의관을 꿈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살인은 분명 잘못된 방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들을 비난할 자격을 가진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에 재판에서 결국엔 빠저나올거야 하면서 비웃는 이들의 모습도 나오는데 이때 주인공들이 처들어와 마피아보스를 심판하고 사라지자 사람들에게 성인이라 불리게 되는 모습은 범죄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도 범죄자들은 결국 풀려나고 이런 분노를 억누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들 또한 그런 분노를 느끼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고 신의 계시를 받는 듯한 꿈을 꾸고 깨어나면서 사건을 터트리는 모습또한 이러한 현실속에서 신념으로까지 굳어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은 잘못됐다고 생각할수있겠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착한사람의 무관심이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이다.
도와준 킬러 역시 얼마나 이일을 해야하는가에대한 형제중 한명의 질문에 자네의 믿음을 얼마나 잘 충실히 전달 했는가가 문제지라고 대답하는데 이는 이들을 도와준 킬러역시 그들과 같은 뜻은 가지고 있었지만 방식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고 행동한 것은 아니란 것이며 이들의 진심은 그저 누군가는 적극적인 자세로 나와야 한다는 마음이 신의 계시인지 잠제의식의 구현된 꿈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나왔다라고 볼수있다.
마지막 장면은 지금까지의 무관심에서 벗어나서 적어도 당당하게 나와서 범죄자들이 선량한 사람들의 심판을 받게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할수있다.
결론적으로 일단 이들의 착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적극적 자세로 바뀔 필요성에 관에서는 옳다고 할수있다. 영화속에서 여론에 이들을 성인들이라 부르는 이유는 범죄에관에서 무관심했던 현실에서 이들의 등장이 그래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라 해석할수도있다.
만약 주인공들같은 범죄와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가 테러리스트와 맞서야만 하는 상황에서라면 주인공을 비판할수가 있을까? 답은 NO에 가깝다.
그리고 이들은 정황을 잘보면 어쩌다가 휘말린싸움에 정당방위가 인정돼서 일단은 풀려났지만 그 어쩌다 휘말린싸움 뒤에 마피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마피아는 고발이되도 보석금내면 풀려날테고 그러다보면 결국엔 다시 또다른 누군가가 비슷한 피해를 볼탠데 세상이 무관심하다는 것에 분노했다고 해석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처형장면을 이러한 울분을 성토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보면 이들을 비판하기에는 어째 이들이 불쌍해진다.[3] 실제로 사건이후 언론에 보도되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에게 이일을 언제까지 해야하냐고 할때의 형제의 모습은 어딘가 힘 없고 지친 모습이다.
2.2. 비판
어설픈 정의가 무책임한 악을 낳는다. -소년이여(이용진)
분명히 법은 완전하지 않다. 법을 만든 인간이 완전하지 않으니 완전할 리가 없지. 그러나 정의를 향한 인류의 노력이 담겨 있는 게 법이다. 너는 독선자다. 독선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 야가미 소이치로(영화판)
절대 넘으면 안될 선이 있는 법이야 선을 넘어 버리면 나를 잃어버리지 우리 가슴에 있는 신을 외면한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늪에 빨려들어가 나올수없어 - 야가미 소이치로(뮤지컬)
당연하지만 사적제재인 만큼 비판의 여지가 많으며 데스노트의 야가미 라이토와 비슷하게 범죄자를 죽인다는 점이다. 아무리 권력욕심이 없고 그저 적극적인 자세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신의 계시라도 받은것처럼 행동했으며
또한 법의 한계에 환멸을 느낀 것도 있었기에 이를 알고있다면 무관심해선 안된다는건 맞지만 전달한다는 방법이 살인이라는 방법이다. 물론 거기 까지였으면 좋겠지만 그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장난스러운 모습에 뭔가 어설프게 싸우는 것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친구가 죽게되면서 결국엔 멈출수 없는 지경에 와버렸다는 점도 이들이 어설픈 싸움을 했음을 알수있으며 적극적인 자세로 나온답치고 사람을 죽이다가 나중에는 사람죽이는데도 읶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에서 그들이 마피아를 쫒을때 발견한 자료를 경찰이나 FBI에게 보내고 그들을 믿을수없다면 그 다음에 싸우는것을 택해도 늦지는 안았고 그리했다면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고 경찰들도 그들을 지지했으니 어느정도 조사는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선택을 안하고 살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정말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는 사람들과는 다르다고도 볼수있다.
만약 그들이 적어도 조금이라도 더 경찰과 FBI를 신뢰하려는 노력이라도 있었다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 적어도 그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더 많았을 것이다.[4][5]
무엇보다 영화속 장면을 흉내낸것만으로도 이 정도까지 해냈다는 건 이들이 충분히 경찰과 협력하면 사람을 안 죽이고 마피아를 막아낼 능력이 있었다는 이야기가된다.
그리고 설사 정말 계시를 받은거라고 해도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이들은 결국 친구를 잃고 근처에 있던 전문킬러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겨우 성공적으로 마피아를 전멸시켰다는 점에서 이들이 얼마나 어설픈 싸움을 했는지 알 수가 있다.
거기다가 FBI가 이들을 도와준 것은 목적자체가 옳기 때문에 도와준 것이다. 실제로 보면 그도 결국 주인공들에게 동조하기는 했지만 살인은 법을 위배한 것이기에 잡아야하는거 아닌가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범죄자들을 죽일때 이들의 기도를 잘 들어보면 제대로된 가톨릭신자다운 기도인지도 의심스럽다.
이들의 방식 또한 어설프다고도 볼 수 있는데 전문킬러가 도와주고 나서야 후속작에서 칩거 생활을 통해 잠시나마 벗어났다는 점에서다. 잘못하면 감당 할 수 없는 끝 없는 싸움에 휘말릴탠데 그 것 또한 각오를 하고 시작했어야 했다. 실제로 후속작에서 진상이 드러나는데 이들의 싸움도 누군가가 뒤에서 조작한것임이 드러나고 그배후까지 죽이게 되는데 이과정에서 이들은 자신들을 도와준 킬러이자 아버지를 잃게되고 체포되었으며 결국 본인들을 도와준 FBI의 도움을 받고나서야 겨우 탈옥한다는 묘사가 있다. 정말 이들이 각오를 했으며 충분히 뜻있는 정의를 보여주고자한 의지를 보여주고 또한 경찰들과도 협력하고자했다면 법도 충분히 이들의 뜻을 이해 해주고 정당방위라도 최소한 고려는 했을 것이다. 물론 그래도 정당방위까지는 인정은 안되겠지만 이해해주고 이들을 비난하는 여론도 적었을 것이란 뜻이다.
이것저것 따지고봐도 적어도 이들이 악하지는 않다고 해도 정말로 무언가 바꾸기위해선 선을 넘여야만 했다면 단 한번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할수있는데 실제로 영화에서 마지막에 사람들이 이들을 비난하거나 또는 옹호하는 등 의견이 크게 갈리는 장면은 마지막에 제판소에 난입해서의 외침과 야카베타를 처형한 이후이다.
정말 적어도 경찰과 협력해서 치안을 돕는 노력이라도 했다면 더 많은이들이 이해했을태지만 두형제는 그게 아니다. FBI가 이들을 옹호하고 도와준건 사실 이 두 형제가 운이 좋았고 FBI가 이들을 찾아서 알아냈고 이 FBI가 하필 이들의 목적은 공감하는 인물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 안그랬으면 마피아 소탕은 그냥 물건너 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짧게 지나가는 사람들 반응들중 비판하는이들을 보면 알수 있듯이 아무도 저 형제들의 비장하고 처절한 사연을 모른다. 어느정도 사연을 알고 있는 것도 FBI뿐이라는 것이다.
거디가다 소시민주의에 사적제제 또한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
[1] 물론 후속작에서 이들이 진짜 아버지임이 드러나지만 영화적 메시지는 변함이 없다.[2] 실제로 이사람이 했던말이며 후술하겠지만 이 영화속 주인공들에 가장 근접한 사례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3] 이 관점에서 마지막 야카베타 처형장면을 보면 이들이 비장하고 처절한 분노를 울부짖는 모습으로 보인다.[4] 영화에서 보면 마지막에 살인은 살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5] 만약 이런 노력이라도 했다면 적어도 법에서는 정상참작이라도 해줄게 뻔한 이야기다.[6] 취소선이 그어저있긴 하지만 2편에서는 건물에서 뛰어내려 창문으로 뛰어들어서 전멸시키는 위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들은 직접 정보를 수집해서 마피아를 제압했고 1편 초반에서도 자수해서 정당방위로 풀려나기 전에 미리 좀도둑으로 위장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