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로 떠내려가다, 무너진 다리에 걸려버린 집 |
1. 개요
Big Thompson Flood 1976
1976년 7월 31일 미국 콜로라도주 빅 톰슨 캐니언의 라리머 카운티에서 일어난 홍수.
2. 사고 당시
빅 톰슨 강은 로키산맥에서 흘러 콜로라도의 빅 톰슨 협곡으로 흘러가는 강으로, 관광명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뉴딜 정책 당시 이곳에 도로를 건설하고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1976년이 있기 전 까지 20차례에 달하는 작은 홍수가 있었다. 하지만 도로나 다리가 조금 망가지는 정도로 끝나 인근 지역 라리머 카운티 사람들은 홍수가 크게 일어나리라 예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어난 가장 큰 홍수가 1만년 전인, 지질학적으로나 찾아볼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빅 톰슨 강 인근에는 32개에 달하는 모텔이 들어설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캠핑장들도 여러 곳 들어섰다. 이들을 단속하기 위한 경찰들의 순찰도 늘어났다. 물론 홍수를 피하기 위한 대비책들도 어느정도 있었다. 인근에 레이더가 있어 구름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1976년은 미국이 독립선언을 한지 200주년이 되는 해, 그리고 콜로라도 주가 미국에 들어선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 관광객이 넘쳐났다. 무려 4,000여명에 달하는 사람이 빅 톰슨 강을 찾아왔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관광지에서 낚시와 캠핑을 즐기며 관광을 즐겼다.
그런데 7월 31일 오후 6시 30분, 빅 톰슨 협곡 위에서 북쪽에서 온 기단과 차가운 기단이 충돌하면서 엄청난 양의 폭우가 일어났다. 강우량은 300mm에 달할 정도였고, 폭우는 협곡을 따라 흘러 내려가며 강물과 합세했고, 강물은 금세 불어났다. 강물이 너무 불어나 인근의 나무들이 꺾여 같이 흘러가고, 거대한 돌덩이들도 물에 떠내려 갈 정도였다. 당시 라리머 카운티엔 약 2,500명에서 3,5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폭우로 인근 전화선이 끊기는 바람에 라리머 카운티 사람들은 대피 명령을 제때 받지 못했다. 불어난 강물이 인근 집들을 건드렸고, 바위가 LPG 탱크들을 건드리는 바람에 곳곳에서 가스마저 새어나왔다. 물은 금세 가슴높이까지 차올랐다. 인근 발전소마저 홍수 피해를 입어 빅 톰슨 강 인근 지역은 정전이 일어났다. 인근 주민들은 급히 홍수를 피해 고지대로 대피했다.
인근 지역 경찰관과 고속도로 순찰대, 로키산맥 산림 관리원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인원들이 동원되어 구조에 나섰다. 하지만 홍수로 도로와 다리가 무너지고, 강물에 바위들이 떠내려가면서 땅을 쳐 땅이 흔들리는 정도라 구조가 힘들었다.
비는 오후 11시가 되어서야 그쳤고, 물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줄어들어 사람들이 다닐 수 있었다.
홍수로 14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중 6명의 시신은 아예 찾지도 못했다. 홍수로 파괴된 가옥과 건물만 해도 480곳이 넘고, 481대가 넘는 차량 또한 침수되거나 떠내려오는 물체에 맞거나 아예 떠내려가 고장났다. 수도관 마저 고장나는 바람에 빅 톰슨 지역은 한동안 식수난에 시달렸다. 재산피해는 당시 기준으로 3550만달러에 달했다.
홍수는 20세기에 미국에서 일어난 홍수 중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홍수 10위권 안에 들어갔고, 콜로라도 역사상 최악의 홍수로 남았다.
3. 사고 이후
홍수로 지역이 초토화된 상태라 주민들은 한동안 구호품으로 생활해야 했다.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사람들을 도왔고, 엉망이 된 지역을 정리했다.
당시 피해가 너무 커서 사망자 목록도 제대로 작성되지 않아 살아있는 사람이 사망자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한 사람은 사망자 목록에 30년간 올라 있다가 오클라호마에 잘 살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빅 톰슨 강에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매년 사고가 일어난 날에 추모식이 열린다.#
2013년에도 빅 톰슨 지역에서 홍수가 일어나 8명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