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5 06:28:15

사카구치 안고


<colbgcolor=#000> 사카구치 안고
坂口安吾|Sakaguchi Ango
파일:205361-attachmen사카구치안고t.jpg
본명 사카구치 헤이고 (坂口炳五)
출생 1906년 10월 20일
일본 제국 니가타현 니가타시 니시오 하타도리
사망 1955년 2월 17일 (향년 49세)
군마현 키류시 혼쵸
직업 소설가,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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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학력 <colbgcolor=#fff,#191919>니가타심상고등소학교 (졸업)
니가타중학교 (수료)
토요야마중학교 (졸업)
토요대학 (인도철학과 / 학사)
활동 기간 1931년 – 1955년
묘소 니가타현 니가타시 아키하구 다이안지
부모 아버지 사카구치 니이치로
어머니 사카구치 아사
배우자 사카구치 미치요 (1908년 결혼)
자녀 아들 사카구치 츠나오
장르 소설
데뷔작 목고의 술창고 (1931) }}}}}}}}}

1. 소개2. 평가3. 한국 출간작4.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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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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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오다 사쿠노스케와 함께 일본의 전후 무뢰파(無賴派)를 대표하는 소설가, 평론가.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방랑벽이 있었고 싸움질을 하고 다니는 문제아였다. 중학교에서 퇴학당했을 정도니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문학에 대한 사랑은 빠지질 않아서 학교에 빠지고 싸움질하는 와중에도 틈틈히 책을 읽으며 구도자처럼 살았다.

토요대학에 들어가 독학으로 5개 국어 넘게 배우며 미친듯이 공부했다. 1931년 드디어 소설가로 데뷔. 단편소설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1946년 2차대전이 끝난 후 패전 직후의 시대를 분석한 '타락론'과 '백치'로 당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오피니언 리더로 떠오른다.

추리소설을 좋아했고 직접 [明治開化 新十郎探偵帖]을 쓰기도 했다. 이를 원작으로 한 UN-GO가 애니메이션화되었고, 2020년 5월에 NHK에서 시대극으로 드라마화한다. 그 밖에도 여러 편의 추리소설을 썼고, 매스컴에서 스캔들에 대해 서투른 추측를 하면 아예 내 밑으로 들어와서 추리 소설을 배우라고 일갈한 적도 여러번 있다. 국내에 번역 출판된 작품은 『투수살인사건(投手殺人事件)』, 『난킨무시살인사건(南京虫殺人事件)』, 『그림자 없는 살인(影のない犯人)』, 선거 살인사건, 불연속 살인사건 등이 있다.
시인 나카하라 츄야와는 친분이 있었는데, 한 번 싸우고 난 후, 둘이 친해졌다고 한다.

1947년 1월 오다 사쿠노스케의 1주기 추도식에 참석했을 때의 일로, 그 자리에 있던 한 여성을 보고 편집자에게 저 여자가 마음에 드니 소개해 달라고 한 일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편집자 曰, "저분 오다사쿠[1] 부인 되시는 분인데요..."(...)[2] 이 대화로 주위는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는데, 그 와중에 동석한 사람들 중 오다의 부인과 면식이 있었던 다자이 오사무가 옆에서 대화를 듣고 매우 난감해했다는 일화가 있다. 오다 부인이 오기 전, 누군가가 오다가 숨기고 있던 여자 이야기를 하려 하자 "오다 부인이 있을 때 말하지 말고 오기 전에 빨리 해버려"라고 한 것도 사카구치였는데, 정작 본인이 오다 부인에게 실례를 범하게 된 셈이다. 역시 타락

부인 미치요(三千代)와는 1947년 신주쿠의 바에서 처음 만났으며, 안고의 업무를 도와주는 비서로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미치요가 복막염으로 쓰러져 안고가 간호를 해주게 되고, 퇴원 후에도 안고 자택에서 요양을 계속하다 그해에 바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아들 츠나오는 53년에 출산). 연애 전에 쓴 기고문에서는 결혼 및 육아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결혼 후에는 금술이 좋았던 걸 보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죽음을 가장 빨리 안 사람 중 한명이기도 하다. 다자이의 투신 직후 알고 지내던 기자를 통해 내용을 알았고, 신문이 나오기 전보다 일찍 매스컴을 피해 잠시 행방을 감춘 적이 있었다. 그때 방문하는 기자들 편으로 두고간 편지가 신문 발행일보다 일러서, 다자이와 내연녀가 사실 살아있고 안고가 어딘가에 두사람을 숨겨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또한 추리소설 작가이기도 했던 안고는 다자이가 남긴 유서 문체가 엉망인 것을 근거로, 당시 다자이가 술에 만취한 상태로 혼자서 자살이니 뭐니 감행할 상태가 아니었지만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내연녀에게 꼬드김 당해서 동반자살당한 건 아닌가 추측하기도 했다.

1955년 2월 17일,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49세.

2. 평가

사카구치 안고는 세속적인 어떤 선입견에도 구애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간을 보았다. 그래서 인간의 심리를 그는 상당히 깊이 안다. 그러므로 그의 문학은 창작뿐 아니라 수필 같은 잡문에까지 그 얽매이지 않는 시각, 활달한 인품이 잘 드러나 재미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이 현대 청년의 것인데 비해 사카구치 안고의 문학은 장래의 어른의 문학이다. 나는 순순히 인지의 진보 발달을 믿어 왔고 문학의 상식도 해마다 건전한 발달을 이루고 있다고 보고 있지만, 일반 독자가 다자이 문학에 능통하여 이를 졸업했을 무렵에야 사카구치 안고 문학의 진가가 다시 한 번 재검토되어 머지않아 정상적으로 이해되고 애독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 사토 하루오 (작가)

나는 사카구치 안고 씨를 한 번도 직접 뵐 기회가 없었지만, 그의 작업에는 항상 경애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전후의 한 시기, 혼란으로 혼란을 표현하는 방법을 그는 작품에서도, 삶의 방식에서도 관철시켰다. 그는 거짓 안정에 결코 속지 않았다. 언어의 진정한 의미에서 아이러니를 그린 작가였다. 그가 시대와 맺은 관계는 냉철한 것으로 저널리즘에서의 그의 한때 열광적 인기 등에 눈을 빼앗겨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미시마 유키오 (작가)

안정된 모든 기질의 해체. 도의, 인정의 해체 이것들은 언제나 과격할 정도로 생활 전반의 해체에까지 이르렀다. 그 완력의 웅장하고 위대함. 그 사고의 참신함. 실로 전인미답이며 나에게는 언제나 귀신의 솜씨처럼 여겨졌다. 내 생애의 사건에서 안고와의 만남만큼 중요한 일은 달리 없다.
- 단 가즈오 (작가)

안고의 작품에서는 에세이가 소설적이고 소설이 에세이적이다. 그러나 안고가 지금도 우리를 끌어들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안고의 작품을 한 권으로 묶을 때 이러한 장르적 구별을 부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안고가 말하는 ‘전적 긍정’이다.
- 가라타니 고진 (평론가)

안고는 뛰어난 작가이자 일류 에세이스트였다. 그는 에세이에 있어서도 어떤 때는 뜻을 말하고 또 어떤 때는 느긋한 여유와 현실에 대한 통찰력으로 세상의 다양한 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안고가 남긴 작품들이 세상의 인생 안내 책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어쩌면 독자의 나이와 성숙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류 문학이란 대개 그런 성격의 것이다.
- 이소다 코이치 (평론가)

안고는 항상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구도의 마음이 너무 강해서 때로는 무너질 것 같은 약한 마음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의 문장 곳곳에 맺힌 슬픔은 청춘의 순수한 영혼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만 스며드는 맑은 물일지도 모른다.
- 나나키타 카즈토 (작가, 평론가)


3. 한국 출간작

  • 일본 호러 걸작선 - 활짝 핀 벚꽃나무 숲 아래
  • 불연속 살인사건
  • 슬픈 집착, 성애 - 전쟁과 한 여자[3]
  • 이런 꿈을 보았다 - 만개한 벚꽃 나무 숲 아래
  • 소설 오다 노부나가[4]
  • 사카구치 안고 단편집
  • 사카구치 안고 산문집
  • 백치ㆍ타락론 외
  • 불량소년과 그리스도 [2021년 발행][5]
  • 사카구치 안고 선집 [2022년 발행][6]

4. 매체에서


[1] 오다 사쿠노스케의 애칭[2] 오다의 부인 사사다 카즈코는 당시 20대의 젊은 소프라노 가수였다. 참고로 오다는 33세로 요절[3] 코다이라 요시오를 소재로 한 내용으로 2012년에 영화화되었다.[4] 우리나라에서는 '울지 않는 새는 죽인다'라는 부제를 가지고 출판됐다.[5] 제목인 '불량소년과 그리스도'는 본서에 실린 친구 다자이 오사무의 죽음을 애도하는 에세이와 동명이다.[6] 기존 단편집과 산문집에 있는 작품들이 다수 중복되어 실려있다. 그럼에도 번역자가 다르기 때문에 말투와 느낌이 상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