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촬영한 산타 마리아호의 복제 선박.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일본에서 만든 산타 마리아호의 복원. 사진에서는 돛이 접혀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돛을 펴면 십자가가 나타난다.
1. 소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서양 횡단에 사용한 기함. 선박의 분류상으로는 카락에 속한다.[1]2. 상세
콜럼버스 함대는 2척의 카락선과 3척의 캐러벨로 이루어진 5척의 함대로 출발했으나 나중에 1척은 배신을 하고 이후 1척은 이를 막다가 침몰하여 최종적으로는 3척(니냐, 핀타, 산타 마리아)이 남았다.그 중에서도 산타 마리아는 콜럼버스가 직접 탑승한 기함으로서 카락선으로 콜럼버스의 함대 내에서는 최대급이었으나, 그렇다고 해도 200톤 이하 정도에 70피트의 길이(미터법으로 환산해보면 18~21m)[2]였으며, 승무원은 약 40명이었다고 한다. 마스트의 수는 총 3개였으며, 1492년 12월 24일에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좌초하여 해체된 후, 남은 목재는 요새의 건설에 쓰였다.
참고로 당시의 속도는 겨우 4노트로서 시속으로 따지면 7.4km/h(...) 이런 속도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건 역시 대단한 일이다.
다만 여기에 부작용이 있는데, 바로 선원들의 반항. 아는 자의 고민과 모르는 자의 고민은 똑같이 위험했다. 콜럼버스를 비롯한 높으신 분들은 "방향은 맞는데 언제 가냐"라고 걱정했고 선원 등 아랫사람들은 "이거 방향도 틀려서 떠돌다 다 죽는 거 아냐?"라고 걱정했던 것이다. 실제로 콜럼버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중간에 예상 못 한 땅뙈기가 있어서 정박할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정말로 인도까지 일직선으로 쭉 가려 했다간 지팡구까지도 못 가고 모조리 고사했을 공산이 매우 컸다[3]. 그래서 가끔 선원들이 항의하면 콜럼버스가 화려한 언변으로 설득하여 무마시켰다.
위의 산타 마리아의 복원은 일본의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의 유산 같은 것이다. 콜롬버스가 목표로 했던 지팡구를 향하여 항해를 한다는 프로젝트에 따라 복원되어 태평양을 한번 건넌 후, 현재는 고베의 해안공원에 가면 보존되어있는 것을 구경할 수 있는데… 이런 배로 대서양을 건널 수 있었다는 게 놀라울 것이다. 사실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게, 그 흔한 미국 허리케인도 아닌 계절풍으로 인한 파도로도 얼마든지 전복 가능한 수준의 쪽배다[4].
[1] 일반적인 카락과는 달리 선수루와 선미루의 높이가 낮은 편이다.[2] 프로펠러기인 DC-3와 엇비슷한 수준이다.[3] 흔히 어린이 위인전 등에서는 콜럼버스의 말을 투자자들이 무시한 이유가 지구가 평평한 줄 알아서 “동쪽 대륙으로 가면서 웬 서쪽으로 항해?“ 라는 반응이었다고 묘사하는데, 실제론 콜럼버스가 계산한 지구의 둘레가 당대의 정설과 동떨어졌기 때문이며, 이 지적은 매우 타당했다. 당시로써도 콜럼버스는 자기 이익을 위해 주류 과학을 무시하고 보는 음모론자에 가까웠다.[4] 보통 이 당시 선박들의 작은 크기를 흔히 '현대로 치면 버스 정도' 라고 비유하는데, 약간 과장이기는 하다. 시내버스보다 조금 큰 45인승 관광버스의 길이가 11.6m 이상급이므로 관광버스와 비교하면 1.5배 정도 되는 셈. 그리고 전장과 폭의 비율이 3:1 정도인 카락선의 설계상 폭은 6m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후대의 카락선이 일반적으로 전장 30m~60m 사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항해시대 초기의 함선인 산타 마리아호는 카락치고는 상당히 작은 배이다.) 물론 중간중간 휴게소도 들리고 보통 몇 시간, 길어야 며칠 타면 그만인 버스와는 달리 배는 고립된 상태에서 수 개월 이상 항해해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