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
서진, 동진의 인물로 자는 태공(泰恭).
상욱의 제자로 집안에서 학문을 배워 모시, 삼례, 춘추, 상서 등을 익히고 역경을 즐기고 기억했으며, 사기, 한서 등 여러 가지 책을 읽었고 사물을 분별할 줄 알면서 들은 것이 많았으며, 자신을 낮추면서 깨끗하고 세속과는 다르게 힘썼다.
군의 공조가 되었다가 효렴에 뽑혔지만 취임하지 않았으며, 주의 부름으로 주부, 별가를 지내다가 주자사 나상이 수재로 뽑자 시어사를 지냈다. 제번령을 지내자 영릉현의 백성들이 따랐다.
310년에 자신을 천거한 나상이 죽자 관직을 떠났다가 상주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남쪽의 교주로 들어갔으며, 촉후지, 후현전을 저술했고 원제 때 덕행이 깨끗하고 허물이 없다고 해서 무평태수에 임명되었다.
정사를 돌보면서 백성들이 기뻐했고 귀하게 되는 것에 뜻을 두지 않았으며, 3년간 재직하고 있다가 사망했다. 교주에서는 고수가 주를 거느리려 하자 주 사람들이 이를 반대했으며, 양석이 군사를 일으켜 난을 면할 수 없었고 시, 부, 론, 의 등 20여 편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