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3-27 13:24:54

서도복

徐道覆
(? - 411년 2월 5일)

동진 때의 해적.

노순의 매부로 손은이 사망하자 노순의 지시로 사마였던 서도복은 403년 봄 정월에 노순의 지시로 동양을 노략질했다가 유유에게 격파당했으며, 404년에 노순이 광주를 함락하고 평남장군을 자칭하자 노순의 명으로 시흥을 공격해 시흥의 재상 원전지를 붙잡았다.

405년 여름 4월에 노순이 동진 조정에 사신을 파견해 공물을 바치자 21일에 조정으로부터 서도복은 시흥의 재상으로 임명되었으며, 410년에 유유가 남연을 공격하기 위해 북벌을 시행하면서 후방이 비자 서도복은 노순에게 빈 틈을 타 건강을 공격하라고 했지만 그가 듣지 않자 직접 번우에 도착해 노순을 설득해 건강을 공격하게 했다. 서도복은 배 만들 재료를 남강산에서 벌목하게 했다가 시흥에 가서 싸게 팔도록 하고 시흥의 사람이 다투어 그것을 사자 배 만들 재료가 크게 쌓여도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전부 모아서 선함을 건조해 10일 만에 완성했고 서도복은 노순과 군사를 나누어 행동해서 심양으로 향하면서 남강, 여릉, 예장 등을 노략질했으며, 서도복이 공강을 따라 내려가자 배, 무기가 많았다. 예장에서 노순과 합류해 유의가 장차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보고하고 노순과 내려가서 5월 7일에 상락주에서 유의의 군사를 격파했으며, 심양에 도착해 유유가 남연을 멸망시키고 남하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는 노순이 강릉을 공격해 형주, 강주 등을 점거하고 동진 조정과 싸우려고 했다.

서도복은 노순에게 이긴 기세를 타고 지름길로 진군해야 한다고 주장해 노순과 다투어 여러 날을 미루다가 노순은 결국 서도복의 의견을 수용했으며, 노순은 강주, 예주 등에서 이기고 4월 14일에 회구에 도착해 안팎에서 경계를 엄하게 하자 서도복이 신정에서 백석에 도착해 배를 불태우고 올라가서 여러 길로 유유를 공격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노순은 모든 것을 안전하게 하는 것으로 계책을 삼고 거절하면서 서도복은 노순이 의심도 많고 결정에도 소심하다고 여겨 탄식했으며, 노순이 여러 현을 노략질해도 얻은 것이 없어 퇴각하면서 동진의 군사의 추격을 받았다.

겨울 10월에는 무리 3만 명을 인솔해 강릉으로 가다가 파총에 도착했으며, 예장구에서 유준과 싸워 선봉대를 물리쳤지만 유준이 바깥에서 측면으로 공격하자 수 만여 명이 죽는 피해를 입고 패하면서 배를 타고 도주해 분구로 돌아갔다. 12월 2일에 노순과 함께 무리 수 만 명을 거느리고 강을 꽉 채우면서 내려가다가 유유가 가벼운 배를 보내 공격하고 센 쇠뇌로 노순의 군영을 쏘면서 화공을 사용해 대패하자 도주해서 시흥을 지켰으며 411년에 2월 5일에 맹회옥과 싸워서 패해 참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