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서재승(徐在承) |
자 | 성서(聖瑞) |
호 | 죽림(竹林) |
생몰 | 1876년 11월 25일 ~ 1915년 7월 22일 |
출생지 | 경상도 영천군 (현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1] |
본관 | 대구 서씨 |
사망지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서재승은 1876년 11월 25일 경상도 영천군(현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탁지부 주사로 근무하던 중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게 넘어가자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을사의병, 정미의병에 가담해 군량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던 그는 1909년에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일제와 맞섰지만 전세가 돌이킬 수 없이 기울자 의병을 해산한 뒤 영주로 피신해 은신했다. 그러나 1915년 친일 첩자의 밀고로 일본 관헌에게 체포된 그는 서울로 압송되다가 1915년 7월 22일 영주시 풍기면에서 총살되었다.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서재승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