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20:38:31

석나리보개 처 정씨


성씨 정(鄭)
이름 미상
출생 1345년[1] 고려 탐라만호부
사망 미상[2], 조선 제주목 정의현[3]
가족관계 남편 석나리보개

1. 개요

고려 말 ~ 조선 초의 인물. 남편은 한림원 8품 벼슬인 직원(職員)을 지낸 목호 석나리보개의 부인이다.

2. 생애

1365년 20세의 나이에 석나리보개와 혼인했다. 남편 석나리보개는 1374년 목호의 난 때 사망했는데, 정씨가 아들이 없고 얼굴이 아름답자 청혼하는 자들이 많았는데 정씨는 이를 모조리 거부하고 절개를 지켰다. 1413년(태종 13년) 안무사 윤임에 의해 정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정려문이 내려졌다. 이후 1428년 열녀로 추서되어 열녀비가 세워졌으나, 어느 시점에 없어져서 1834년에 다시 열녀비가 세워져 현전하고 있다.

3. 기록

【열녀】 고려 정씨(鄭氏)는 직원(職員) 석나리보개(石那里甫介)의 아내이다. 합적(哈赤)의 난에 그의 남편이 죽었는데, 정씨는 젊고 아들이 없고 얼굴이 아름다웠다. 안무사 군관이 강제로 장가들려 하니, 정씨가 죽기로 맹세하여 칼을 끌어 스스로 목찌르려 하므로 마침내 장가들지 못하였으며, 늙도록 시집가지 않았다. 일이 알려져 정려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제주목 정의현 조
정씨(鄭氏)는 나이 20에 남편이 죽었으나 절개를 지켰습니다. 족친(族親)이 그 뜻을 빼앗고자 하니, 정씨는 원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남편이 비록 죽었다 하지만 어찌 차마 그를 버리겠어요? 만약에 다시 와서 나에게 강요한다면 반드시 몸을 바다에 던져 죽고 말 것이라.’하고, 드디어 도망하니, 일가 친척이 그를 의롭게 여겼습니다. 정씨는 부도(婦道)를 온전히 하여 나이 70이 되었는데, 이 풍문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흥기(興起)합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13년 6월 11일 무오일 기사 중
정의(旌義) 사람 직원(職員) 석아보리개(石阿甫里介)의 아내 무명(無命)은 나이 20에 시집갔다가 9년 만에 남편이 죽고 자식도 없었으며, 부모와 노예도 없었으나, 곤궁과 기아(飢餓)를 달게 여겼고, 청혼하는 자들도 많았으나 끝내 절조를 고치지 않았다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0년 10월 28일 기사 중

4. 출처

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석방리보개 처 정씨
[1] 석나리보개의 사망(1374년) 당시 29세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역산.[2] 1413년 - 1428년 사이로 추정된다.[3] 오늘날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