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선규환(宣奎煥) |
이명 | 선규환(宣圭煥) |
생몰 | 1901년 4월 24일 ~ ? |
출생지 | 평안북도 영변군 용산면 구장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선규환은 1901년 4월 24일 평안북도 영변군 용산면 구장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1년 12월 중흥단(中興團)에 가담했고, 그해 12월 14일 중흥단원 선경환(宣璟煥)ㆍ김영호(金永浩) 등과 함께 평북 개천군 외서면 마장리에서 자산가의 집을 조사했으며, 12월 18일에 자산가의 집을 찾아가 군자금을 모집했다. 또 1922년 1월 5일과 16일에는 평북 영변군 오리면 봉무동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이후 1922년 2월 3일과 5일, 2월 9일, 3월 20일과 22~24일에도 영변군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그러나 얼마 후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2년 5월 22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 혐의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했다. 그러나 1922년 8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도 기각되어 평양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7년 7월 19일에 출옥했다. 그 후 1928년 4월 3일 평북 영변군 오리면 봉우동에 있는 자산가의 집 세 곳에서 군자금 60여 원을 모집했다가 같은 달 14일에 평남 경찰에게 다시 체포되어 1928년 6월 2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강도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징역은 얼마든지 시켜라. 그러나 나는 그대들의 법률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후 9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선규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