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29 10:47:38

성기학

영원무역 그룹 초대 회장
성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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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7년 7월 8일 ([age(1947-07-08)]세)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직업 기업인
현직 영원무역, 영원아웃도어 회장
학력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졸업 / 17회)
서울대학교 (무역학과 / 학사)
배우자 이선진[1]
자녀 장녀 성시은[2]
차녀 성래은(1978 ~)[3]
삼녀 성가은(1979 ~)[4]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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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영원무역의 창업주로 영원 그룹 초대 총수.

2. 생애

1947년 서울에서 차남으로 태어났고, 1.4 후퇴 때 경상남도 창녕군으로 내려가 초등학교 4학년까지 지냈다. 이후로는 서울에서 지냈으며, 부친이 대구에서 사업을 했기 때문에 방학마다 대구로 내려갔다고 한다.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토목공학과 진학을 희망했으나 적록색약이어서 공대로 진학하지 못하고, 1996년 서울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하여 1970년 졸업하였다.[5] 이후, 서울통상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1년 반 정도 근무하며 유럽에 스웨터 수출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 유학을 가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서울통상 재직 시절 알게 된 스웨덴 바이어로부터 한국의 의류 수출 에이전트하는 사람을 소개 받아 3자 동업으로 1974년 영원무역[6]을 설립하게 되었다. 성기학 회장은 원래 동업자들에게 회사를 맡기고 빠지려는 생각이었으나, 1984년 다른 두 명이 떠나고 성기학 회장이 대표이사가 되어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3. 가족관계

조부는 창녕에서 미곡 수출 사업을 하였다.
부친인 우석 성재경 선생은 1945년 상경하여 출판사를 차렸는데, 이는 양서를 발행하여 한국인들이 여러 학문을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창녕으로 피난 갔는데, 이곳에서 농장을 운영하면서 농민들을 계몽하고 농업 기술을 보급하였다. 그리고 1968년 대구에서 협성농산을 설립하여,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농산물 저온저장 사업을 하였다. 협성농산은 성기학 회장의 형인 성재경 회장이 이어 받았다.


[1] 갤러리목금토 관장[2] 와이엠에스에이 사내이사[3] 영원무역홀딩스 부회장 겸 영원무역 부회장[4] 영원아웃도어 사장[5] 학교에 꽤 애정이 있었는지, 그가 이후 설립한 영원무역서울대학교에 활발한 기부를 하였고, 성기학 회장은 사비 100억원을 기부하기도 한다.[6] 영원무역의 이름은 "젊은이는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클리프 리차드의 1961년 팝송 The Young Ones에서 따온 명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