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에 의하면 에데사의 왕이 극심한 병에 시달리는 와중에, 예수라는 사람이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을 듣고 한 번만이라도 뵙기를 청했으나, 예수는 공생활 중이었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대신 수건 하나를 들어 얼굴을 갖다 대자 기적으로 수건에 예수의 얼굴이 찍혀나와서 그것을 에데사에 보냈는데, 왕이 그것을 보자마자 병이 씻은 듯이 나아서 즉시 자신은 물론 에데사 왕국 전체가 개종했다고 한다. 또한 그 기적의 수건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왕궁 앞에 높은 기둥을 세워 매달았다고 한다.
후일 왕국이 침략당하여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누군가가 수건을 보호하고자 집 안에 벽돌을 쌓아올려 비밀스러이 공간을 만들었다. 그 안에 수건 위에 벽돌을 한 장 얹고 등불을 켠 채로 안치한 뒤 벽돌을 쌓고 시멘트로 마무리하여 밀실로 만들었고, 그대로 잊혔다고 한다. 이후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후 어느 날, 벽돌 틈 사이에서 빛이 새어나옴을 누군가가 우연히 보고는 의아해하며 벽을 헐어보았는데, 3백 년이 지났음에도 등불이 여전히 타오르는 채로 수건이 고이 있더라고 한다.
이 수건은 메소포타미아 북부 에데사(현 터키 샨르우르파) 시민들이 자랑하는 유물로 보관했다. 하지만 943년에 동로마 제국이 도시의 포위를 푸는 대가로 이 수건를 요구하여 콘스탄티노플로 가져갔다. 이때 이미 에데사는 이슬람 세력에게 정복된 지 3백여 년이 지난 터라 주민들은 무슬림이 대다수였지만, 예수는 이슬람에서도 무함마드 다음가는 신의 사도요, 예언자여서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그다드의 칼리파에게 허가받아 그리스인들에게 넘겨주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이 수건을 맞아 성대한 행사로 기념했고, 황제 로마노스 1세의 지지율도 급상승하였다. 하지만 1204년에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였고 1207년에 베네치아 공화국이 이 수건을 가져간 이후로는 행방이 묘연해졌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13세기 중반에 프랑스에서 나타났지만, 18세기 말 혁명의 혼란기에 사라졌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