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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我摩理勢
(? ~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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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스카 시대의 인물로 당시 일본 정국을 휘어잡던 대가문 소가씨의 일원이다. 소가노 이나메의 아들, 소가노 에미시의 숙부, 소가노 우마코의 동생. 사카이베노 마리세(境部摩理勢)라고도 한다.2. 생애
612년 2월 20일에 황태부인 키타시히메를 히노쿠마의 대릉에 장사지내면서 서열에 따라 조사를 읽었는데, 마리세는 네 번째에 많은 씨족들과 함께 씨성의 근본에 대해 아뢰었다.이 때 아베노 우치노오미토리는 첫 번째, 나카토미노미야도고로노무라지오마로는 두 번째로 조사를 읽었는데, 사람들이 마리세와 오마로는 조사를 잘 마쳤지만 미토리는 잘하지 못했다고 했다.
628년 음력 3월 6일에 스이코 덴노가 타무라 황자, 쇼토쿠 태자의 아들이자 소가노 에미시의 조카였던 야마시로노오오에(山背大兄) 황자를 불렀는데, 스이코 덴노가 이 때 남긴 유언이 두 사람을 황위 계승의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라 군신 간에 충돌이 벌어졌다.
소가노 에미시가 타무라 황자를 지지했고 에미시가 누구를 천황으로 세워야 하냐고 묻자 마리세는 야마시로노오오에 황자를 세워야 한다고 했지만 타무라 황자가 황위를 계승하게 되었으며, 에미시가 아베노 우치노오미토리, 나카토미노미야도고로노무라지오마로를 보내 어느 왕을 천황으로 할 것이냐고 묻자 일전에 친히 물었을 때 이미 말씀드렸다며 새삼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크게 화를 내 자리에서 일어나서 갔다.
이 때 소가씨 일족들이 모두 모여 소가노 우마코의 묘를 만들려고 묘소에 머물렀는데, 마리세는 묘소의 막사를 부수고 소가의 사유지로 물러갔다. 에미시가 자신의 아버지를 공격한 것에 분노해 사자를 보내 당신 때문에 후세에 역적 소리를 들어야 겠냐며 지금이라도 틀렸다는 걸 인정하면 살려주겠다고 하자 마리세는 거부하고 야마시로노오오에 황자의 이복형제인 하츠세베나카츠 왕의 궁으로 숨었다.
에미시가 이 일을 야마시로노오오에에게 고하자 야마시로노오오에는 마리세에게 아버지가 총애한 신하였고 그 뜻에 따라준 것은 고맙지만, 그대 때문에 천하가 어지러울 수 있고 숙부를 배반할 수 없다며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따르라는 말을 했다.
대부들도 야마시로노오오에 왕의 말을 거역해서 안된다고 하자 마리세는 고립되어 의지할 곳이 없어져 울면서 집에 돌아와 지냈으며, 에미시가 군사를 보내자 차남인 아야를 데리고 문을 나가 걸상에 앉아서 기다렸다. 군사들이 도착해 쿠메노모노노베노 이쿠히에게 목 졸라 죽이도록 하자 마리세는 아야와 함께 교살되어 같은 장소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