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Sodder children disappearance1945년 12월 24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페이어트빌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화재 실종 사건이다.
2. 소더 가족
실종자는 ※ 표시.- 조지 소더(George Sodder)
아버지. - 제니 소더(Jennie Sodder)
어머니. - 존 소더(John Sodder)
첫째. 사건 당시 22세. - 매리언 소더(Marion Sodder)
사건 당시 19세. - 조 소더(Joe Sodder)
사건 당시 17세. 당시 제2차 세계 대전 파병 중이었다. - 조지 주니어 소더(George Jr. Sodder)
사건 당시 16세. - 모리스 소더(Maurice Sodder, ※)
사건 당시 14세. - 마사 소더(Martha Sodder, ※)
사건 당시 12세. - 루이스 소더(Louis Sodder, ※)
사건 당시 10세. - 제니 소더(Jennie Sodder, ※)
사건 당시 8세. - 베티 소더(Bettie Sodder, ※)
사건 당시 5세. - 실비아 소더(Sylvia Sodder)
사건 당시 3세. 2021년 형제자매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사망하였다.
3. 불길 속에서 사라진 아이들
아이들의 부모였던 소더 부부(조지 소더, 제니 소더)는 10명 가량의 자녀를 두고 있었으며, 사건이 최초로 벌어진 크리스마스 이브 날, 그들 중 5명(모리스, 마사, 루이스, 제니, 베티)만이 집안에 남아 있었다. 불이 난 직후 4명의 아이들은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남은 5명은 미쳐 빠져나오지 못하고 집안에서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소방관이 소더 가족 저택의 화재를 진압했을 당시 집안에서 아이들의 유골이나 뼈들이 발견되지 않아 이들이 단순한 화재 사망자가 아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4. 의문스러운 흔적들
- 집 전화의 전화선이 끊어져 있었다.
- 화재가 발생하기 전, 소더 부부 집의 전화선이 절단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누군가 소더 가의 저택에 침입해 고의로 끊어놨을 가능성 또한 시사한다.
- 타버리지 않은 채 사라진 유골
- 화재에 휘말려서 사망했다면 전소된 유골이 발견되어야 하지만, 다섯 아이들의 유골은 집안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 사라진 사다리
- 조지 소더는 창고에 보관중이던 사다리를 꺼내 2층 창문으로 진입하려 하였으나, 화재 당시, 사다리는 사라져 있었다고 한다.
- 고장난 트럭
- 소더 가족이 운전하는 2대의 트럭에 시동이 모두 꺼진 채 고장이 나 있었다.
- 베티 소더[1]의 행방
- 사건 발생 후, 부부가 어느 신문 기사에서 베티로 보이는 여자 아이의 사진을 발견, 기사에 실린 어린이가 실종된 베티라 확신하고 신문사를 통해 수소문하며 베티를 찾아 다녔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소더 부부는 사건 발생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의 행방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으며, 실종된 아이들 중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이제 막 성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1명의 사진을 받은 적도 있으나, 사건의 진상은 끝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5. 사건의 배경
소더 가의 가장인 조지 소더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출신으로, 철도업에 종사하던 그는 소꿉 친구인 아내 제니를 만나 결혼했다. 이후 미국에 정착해서 모은 자금으로 대규모 석탄 사업을 벌이며 성공적인 가도를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독재자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무솔리니를 지지하는 다른 이탈리아계 이민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실제로 사건이 있기 며칠 전부터 그는 의문의 협박을 여러 차례나 받았다고 한다. 그 중 하나는 소더 가족의 집에 한 방문 판매원이 찾아와, 당신의 집을 불태우고 네 아이들도 데려가겠다라고 협박을 했다는 증언이다.그 밖에도 소더 가족이 잠든 밤 늦은 시각에 의문의 차량이 그들의 집 앞을 수 시간 가량 서성댔다는 목격담들이 있었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볼 때, 소더 가족은 단순 화재가 아니라 괴한의 침입에 의해 집안에서 공격받았을 가능성이 나온다.
6. 그 밖의 의문점들
- 소더 저택의 화재 원인은 공식적으로 전기 합선에 의한 화재 사고로 결론이 났지만, 사건 당시 집안의 전기 배선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화재 발생 시에도 집안에 전등 스위치는 모두 켜져 있었고 전화선만 끊어져서 가족들이 긴급 신고를 하지 못한 것은 꽤나 수상한 의문점으로 남는다.
- 조지는 2층 창문으로 올라가서 아이들을 구출하려고 했으나, 항상 같은 자리에 놔뒀던 사다리가 사라져 있었고 집 앞에 세워둔 트럭은 시동이 꺼진 채 고장이 나 있었다. 정황상 누군가 구조를 할 수 없게끔 의도적으로 계획하여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 뼈는 일반적으로 화씨 2,000도 (섭씨 약 1,1000도)에서 불타야지만 완전히 소실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소더 가족의 집은 45분만에 전소되었으며, 잔해를 조사했지만 아이들의 뼈나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집안에 남아 있던 가재도구들 중 일부는 불에 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이들은 화재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건 이후 몇 년 간, 아이들을 봤다는 여러 목격 증언들이 퍼져 나왔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한 여성이 소더가 저택에서 50km 가량이나 떨어진 호텔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이들을 봤다고 증언함.
- 도로변에서 길을 헤멘 채 떠돌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는 증언.
- 아이들이 강제로 차에 태워져 납치되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
- 1949년, 익명의 한 여성이 조지 소더로부터 편지를 보냈는데 아이들은 이탈리아로 정착해서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가 도착함.
7. 의문의 사진
사건이 발생한지 22년이 지난 1967년에 제니 소더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사진 한 장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에는 한 청년이 찍혀 있었고, 뒷면에는 "루이스 소더, 나는 형제들이 보고 싶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소더 부부는 이 청년이 실종된 아들 루이스와 매우 닮았다고 주장했지만,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었고, 사진속의 청년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이윽고 사설 탐정을 고용해 사진을 보낸 제보자와 주소를 추적했지만 단서 없이 실마리가 끊기고 말았다.8. 가설과 음모론
- 방화 및 납치설
가장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아이들이 불이 나기 전 이미 납치되었고, 화재는 증거 인멸을 위한 방화였다는 것이다. 소더 가족의 반 무솔리니 성향 때문에 시칠리아 마피아가 보복 행위를 목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과 누군가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해 가족들이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 또한 시사한다. - 보험 사기설
일부에서는 조지가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화재를 일으켰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그는 이후 남은 생애동안 아이들을 찾는 데만 전 재산을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에 신빙성이 매우 낮다. - 사고 및 혼란 속 실종설
아이들이 실제로 화재로 사망했지만, 화염과 함께 유골도 소실되어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유골이 발견되지 않은 점, 사다리와 트럭의 미스터리, 이후의 목격담을 고려하면 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9. 결론
소더 가족 아이들 실종사건은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으며 가족들은 사건 직후 아이들의 사진과 정보를 실은 실종자 찾기 현수막을 도로변마다 내 걸었지만 결국 소득없이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이후 조지 소더는 1969년, 제니 소더는 1989년에 각각 세상을 떠났으며, 남은 가족들이 진실을 찾기 위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라진 아이들의 행방이나 결정적인 단서는 8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수수께끼 같은 실종사건 중 하나로 남아있다.
[1] 실종 당시 5살, 10남매 중 아홉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