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소윤명(蘇允明) |
생몰 | 1871년 ~ 1912년 1월 25일 |
출생지 | 전라북도 임실군 상운면 입석리 |
사망지 | 전주형무소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소윤명은 1871년생이며 전라북도 임실군 상운면 입석리 출신이다. 그는 1909년 음력 6월 전남 임실군에서 정성련(鄭成連) 의병장의 부대에 가답했고, 음력 6월 5일 밤 정성련 휘하 의병 15명과 함게 총기를 휴대하여 전북 임실군 상신덕면 고치리에 거주하는 서경량(徐京良)의 집에 가서 “우리들은 의병으로 군자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여 엽전 55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했다. 그리고 1909년 음력 8월 23일에는 김봉국(金鳳國) 외 3명과 함께 임실군 하운면 유정리에서 밀정 혐의를 받고 있던 최춘식(崔春植)과 홍문국(洪文國)을 태인군 호두산으로 압송했다. 그리고 “너희들이 갈담헌병파견소(葛潭憲兵派遣所)에 우리들의 동정을 밀고한 까닭에 우리 동지 1인이 헌병에 체포되기에 이르렀으므로 그 복수로 너희 두 명을 살해할 것이다”하고 두 명을 묶어 곤봉으로 징치하고, 홍문국으로부터 엽전 25냥을 군자금으로 모집했다. 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09년 3월 2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강도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12년 1월 25일에 옥사했다.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소윤명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