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07 21:04:02

손근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후한 말의 상산상에 대한 내용은 손근(상산상)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孫根
(111 ~ 181)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고대 중국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원석(元石)으로 손랑의 장남, 손종의 형. 청주 북해국 고밀현 사람.

2. 생애

가문은 관직을 지낸 사람이 많은 명문으로 아버지와 형 뿐만 아니라 숙부는 낙안태수, 아들은 승씨령을 지냈다고 하며, 손근은 간의대부, 의랑, 형주자사, 안평국상을 지내고 181년에 사망했다.

가족들이나 벼슬을 역임한 것이나 북해국 고밀현 사람인 점을 보면 손씨는 북해국의 대성으로 보이는데, 북해국 손씨가 강했음을 알려주는 일로 20여 년 후인 초평 연간에 공융왕수를 주부로 삼아 고밀현의 현령을 대행하도록 하면서 벌어진 일이 있다.

고밀현의 손씨의 자식이나 손님들이 자주 법을 어겼는데, 백성들 중에는 약탈하는 자가 있어서 약탈한 백성이 손씨의 집으로 도망가면 관리들이 잡을 수 없었다. 왕수가 백성들과 관리들을 인솔해 손씨의 집을 포위했는데, 손씨가 집안 사람들을 동원해 저항하자 관리와 백성들이 두려워 앞으로 나가지 못하자 왕수가 감히 공격하지 못하는 자는 적과 똑같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하면서 손씨가 그 백성을 내주게 하고 이 일로 인해 호족들이 복종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