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01:43:48

송군비

宋君斐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1. 개요

고려의 인물.

2. 생애

1256년 1월 25일에 몽골 제국의 군사들이 여러 섬들을 공격하려 한다는 보고를 듣고 고종의 명으로 이광과 함께 파견되어 수군 300명을 거느리고 남하해 몽골의 군사를 방어하러 갔으며, 이광과 영광까지 가서 길을 나누어 몽골의 군사를 공격하기로 약속했다가 몽골의 군사가 대비하면서 이광은 섬으로 되돌아갔지만 송군비는 입암산성으로 들어갔다.

성 안의 강건한 장수들은 적에게 투항하고 늙은이와 어린이만 있었는데, 송군비는 수척하고 파리한 사람을 거짓으로 성 밖으로 나가게 해 적들에게 보여줬으며, 이를 본 몽골군이 성 안에 식량이 떨어졌다고 생각해 군대를 이끌고 성 아래까지 갔다. 3월 28일에 송군비는 정예병을 이끌고 힘껏 싸워 적을 패배시키고 죽이거나 부상입힌 자가 많았고 적의 관인 4명을 생포했다.

추밀원부사가 되었고 1266년 11월 28일에 김찬과 함께 흑적(黑的)에게 동행해 일본에 파견되었는데, 1267년 정월에 거제도 송변포에 도착했다가 풍파가 험난한 것을 보고 두려워 돌아왔다. 원종의 명에 따라 흑적을 수행해 몽골로 파견되어 일본에 가지 못한 상황을 아뢰는 서신을 보냈다. 8월 1일에 쿠빌라이 칸이 일본에 가는 것을 재촉하는 서신을 고려로 가져왔으며, 이후 관직에서 물러났다.

임연이 죽고 1270년에 임유무가 집정자가 되자 송군비, 이응렬에게 물어 일을 결정해 실권자가 되었으며, 5월 14일에 임유무가 원종의 명령을 받은 홍규, 송승례 등에게 붙잡혔다가 참수당했고 송군비는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