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export-led industrialization
수출 주도 공업화, 수출 주도 전략이라고도 한다.
1. 개요
수출 주도란 해외 시장에 재화를 판매할 목적으로 생산하도록 이끄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산업화를 달성하는 것을 수출 주도 산업화라고 한다.2. 장점
외화를 다량으로 벌어들이기 매우 용이하고 이론상 국내 시장과 함께 해외 시장을 대상으로 생산을 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쉽다. 또한 경영 성과를 파악하기도 용이하여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에도 적합하다. 여러 개발 도상국에서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적어도 개도국치곤 부유하게 만들어줬고, 대한민국과 같은 일부 사례에서는 아예 선진국까지 진입시켜 주는 초석이 된 전략이기도 하다.즉, 수출 주도 산업화는 성과를 내기 좋고 실제로도 성과를 낸다. 반면 경쟁자인 수입 대체 산업화는 성과가 별로 없다는 비판이 많다.
3. 비판
그러나 후발 국가가 이를 실시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뒤따른다. 우선, 후방 산업이 성숙하지 못할 경우 수입의 증가를 초래함으로써 국제 수지상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다. 2차 생산물을 중점적으로 수출할 경우 기본적으로 국내에 규율이 있는 노동 시장이 존재해야 하며, 임금 상승 등으로 인한 비교 우위 상실을 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산업의 고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세계적 규모의 무역 확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시장보다 불안한 세계 무역 시장과, 국제 자본 시장 동향에 제약받기 쉬우므로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받쳐줘야 하며, 많은 국가들이 이를 실시할 경우 공급 과잉에 빠질 우려가 있고 후발 국가일수록 그 타격이 크므로 주의가 필요하다.[1]이런 이유로 저개발국이나 개발 도상국이 수출 주도 산업화 경제를 설계한 경우 필연적으로 낮은 임금과 수출 가능한 일부 품목에 대한 선택과 집중, 수출 장려를 위한 국가의 지원 등 계획 경제의 요소가 많이 들어가고[2], 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시장 경제의 후퇴와 노동자의 인권이 희생되는[3] 내적 부작용을 해결해야 한다. 또한 계획 경제의 설계도 중요해서 정부가 국제 수출 시장에 대해 무지할 경우 잘못하면 되레 무역 수지 악화로 인한 경제 위기가 오기 쉽다.
실제로 한국은 수출 주도 산업화가 정착된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미국 연준의 금리와 환율 상황에 따라 수출 물량과는 무관하게 무역 수지가 널뛰기하는 경향이 심해 이것이 서민 경제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이다. 여기에 21세기 이후 저출산으로 인해 국내 성장 동력이 고갈된 상황에서 국민 여론 때문에 이민도 대거 받기 어렵자 2000~2010년대 중반까지 수출 중심 정책을 더욱 강화했는데 당시 중국발 경제 위기로 큰 타격을 받고 2015년 성장률이 급전직하, 1인당 GDP도 역조 현상을 보였다. 2022년에도 우-러 전쟁, 미 연준의 금리 인상 등 미국 시장의 긴축 압력 때문에 환율이 폭등해 무역 수지가 순식간에 적자로 돌아서는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4. 국내 사례
한국은 수출 비중이 높은 나라이다. 50년대 단기 차관을 끌어다 쓰게 되면서 6년 이상 증가 추세에 있던 대한민국의 외환 보유고는 1962년 3월을 정점으로 군정 내내 수십 할 감소하였고,[4] 당시 수출조합법(1961. 9. 9), 수출진흥법 등 16개 법령(1962. 3. 17) 등을 공포하고 1차 산품의 수출을 극대화함으로써 외화를 충당하려 했던 정부의 노력은 실패하고 만다.그러나 공산품의 수출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고 이에 주목한 정부는 62년 하반기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수정하면서 무역 계획도 변경하여 1963년 1월 1일부터 수출입 수출 링크제를 실시함으로써, 수출업자에게 수출 대금 전액을 수입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권리를 부여하고 이의 양도를 허가하여 프리미엄 시장을 만들었다. 즉, 가득액을 불문함으로써 단적인 고용 창출, 수출 산업 유도, 경쟁력 강화를 노린 것이다. 이는 수출 장려 보조금 지급 제도와 함께 수출 기업으로 변모하려는 기존 기업들의 요구가 어려움 없이 받아들여지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직접적 수출 진흥 정책은 GATT 15조 4항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에 따라 단일 변동제로 이행한 뒤에는 점차 이를 폐기, 우회하고, 수출용 원자재 수입에 대한 마진 철폐, 수출 금융 금리 인하, 수출 금융 융자 비율 인상, 수출용 원자재 수입에 대한 관세 환급 등 간접적 수출 진흥 정책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선회하여 수출 기업을 육성하였다. 그 결과 당시 유럽에서 대한무역의 후진국 혜택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성과를 거두었다.
100억달러 수출 기념 상품 전시회 (대한뉴스 #1166, c.1977)
얼마나 수출에 목맸는지, 1977년 수출 100억 불을 달성했을 당시 사회 분위기가 어땠냐면 당시 군사 정부조차 과장 좀 보태 눈물을 흘리며 기념우표 같은 것도 나오고 그랬다. 민주화된 이후에도 1995년 수출 1000억 불, 2004년 2000억 불, 2006년 3000억 불, 2008년 4000억 불, 2011년 5000억 불, 2018년 6000억 불을 넘기며 2010년대까지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갔다.
5. 관련 항목
[1] 최상오, 외국원조와 수입대체공업화.[2] 사실 이 점은 수입 대체 산업화와 수출 주도 산업화의 공통점이다. 둘 다 목적은 다르지만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전제로 하므로 계획 경제의 요소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똑같다.[3] 후술하듯 수출액 경신에 목매달던 시절, 그만큼 대한민국의 기간 노동 인력들도 당시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많이 갈려나갔다. 1977년 대한민국 무역 100억 불을 달성했지만, 유신 정권 말기와 겹친 당시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노동 환경 개선 인식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환기되기 시작한다.[4] 1962년 말 외환 보유고는 1.67억 불로 1961년 말 대비 3900만 불이 감소한 것이다. 김정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