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스탠 모텐슨 Stan Mortensen |
본명 | 스탠리 하딩 모텐슨 Stanley Harding Mortensen |
출생 | 1921년 5월 26일 |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더럼주 사우스실즈[1] | |
사망 | 1991년 5월 22일 (향년 69세)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포지션 | 센터 포워드 |
신체조건 | 175cm / 73kg |
등번호 | 9 |
소속팀 | 블랙풀 FC (1941~1955) 헐 시티 AFC (1955~1957) 사우스포트 FC (1957~1958) 배스 시티 FC (1958~1959) 랭커스터 시티 FC (1960~1962) |
감독 | 블랙풀 FC (1967~1969) |
국가대표 | 25경기 23골 (잉글랜드 / 1947~1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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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렉트릭 힐스(Electric heels)
잉글랜드의 전 축구 감독.2. 생애
2.1. 어린 시절 그리고 전쟁
모텐슨의 할아버지는 노르웨이 출신으로 선원이었다. 모텐슨의 아버지는 모텐슨이 5살 때 사망했고 모텐슨의 집안은 이로 인해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모텐슨은 축구에 대한 열정만은 대단했다. 그는 학교에 다닐 때 종종 자신보다 몇 살 위의 형들과 시합을 했는데 이 능력을 인정받아 블랙풀의 유스팀에서 그를 스카웃해갔다.오랜 시간의 노력 끝에 1939년, 드디어 1군 무대에 데뷔를 앞두고 있었지만 전쟁이 터져버렸다. 모텐슨은 무선 기술병으로 RAF에서 복무하던 중에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가 탔던 비행기가 폭격을 당했는데 같이 탔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모텐슨만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채 간신히 살아남았다.
2.2. 선수 생활
1941년에 블랙풀과 계약을 체결한 모텐슨은 전쟁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블랙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블랙풀에서의 활약으로 1947년 5월에 모텐슨은 처음으로 삼사자 군단에 선발되었다. 데뷔전의 상대는 포르투갈이었는데 모텐슨의 4골에 힘입어 잉글랜드는 10대0으로 대승을 거뒀다. 모텐슨은 자신의 다섯번째 A매치였던 스웨덴전에서도 해트 트릭을 기록했다. 그리고 소속팀 블랙풀은 당시 잉글랜드 최고의 선수 스탠리 매튜스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모텐슨은 팀의 센터 포워드로서 꼬박꼬박 골을 넣었다. 그는 전쟁 이후로 11년 연속 블랙풀의 최다 득점자였으며 FA컵에서는 5년간 12경기 연속골을 넣기도 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그의 활약은 변함없어서 월드컵 대표로 나가 주포로 활약했으며 현역 시절에 모텐슨은 잉글랜드 최고의 센터 포워드로 명성을 날렸다. 잉글랜드의 첫 월드컵 본선 득점자 역시 모텐슨이었다. 1950-51 시즌에 모텐슨은 리그 15경기 연속 득점 기록[2]과 함께 30골을 넣어 리그 득점왕 타이틀도 차지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팀의 성적이었다. 블랙풀은 FA컵에서만 두 번의 준우승을 차지했을 뿐 우승과는 다소 거리가 먼 세월을 보냈다.
1953년, 블랙풀은 또 한 번 FA컵 결승전에 진출했다. 상대는 볼턴. 이 시합에서도 후반 15분까지 스코어는 1대3. 모텐슨의 득점포는 가동되었지만 또 패배할 듯 보였다. 그런데 스탠리 매튜스가 갑자기 발동이 걸렸다. 매튜스는 볼턴 수비진의 틈을 노렸고 모텐슨은 골키퍼의 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후반 종료 직전, 모텐슨은 프리킥을 볼턴의 골문에 꽂아넣으며 해트 트릭을 완성했다. FA컵 결승전 역사상 최초의 해트 트릭이었다. 승부는 이제 원점. 매튜스가 후반 인저리 타임에 다시 볼턴의 왼쪽을 초토화시킨 후 크로스를 올렸고 그대로 경기는 뒤집혔다. 이것이 저 유명한 매튜스 파이널이었다.[3]
모텐슨은 1955-56시즌을 앞두고 블랙풀을 떠났고, 블랙풀은 모텐슨의 마지막 시즌에 거의 리그 우승 경쟁에서 결실을 볼 뻔 했지만 버스비의 아이들에게 아쉽게 막판 뒤집기를 당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이 무렵의 모텐슨은 무릎 부상으로 예전의 기량을 펼쳐보일 수 없었다. 1958년, 사우스포트에서의 계약 연장 제의를 거절하고 모텐슨은 정식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그는 리그 소속 클럽이 아닌 클럽들에서 축구를 더 했다.
무릎에 문제가 있었고 여러 차례 주사를 맞기도 했습니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려웠어요.
스탄 모텐슨
스탄 모텐슨
2.3. 이후
강등당한 친정팀 블랙풀에서 감독을 맡기도 했지만 모텐슨은 승격은커녕 2년차에 8위로 시즌을 마쳤다는 이유로 잘렸다. 하지만 그 이후에 모텐슨은 팀을 돕기 위해 자신의 메달을 경매에 부치기도 하고 1983년 블랙풀의 부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할 정도로 블랙풀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989-90 FA컵에서 블랙풀은 매튜스 파이널(또는 모텐슨 파이널)의 상대였던 볼턴과 경기를 치렀다. 당시 모텐슨은 매튜스 파이널에서 상대팀 볼튼의 스트라이커로 뛰었던 냇 로프트하우스와 함께 경기를 관전하기도 했다.1991년 모텐슨은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70번째 생일을 나흘 앞둔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블랙풀 홈구장에 있는 모텐슨의 동상 |
3. 플레이 스타일&평가
일렉트릭 힐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꽤 빠른 선수였다. 그리고 어느 각도에서든지 슈팅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공격수였다고 전해진다.4. 뒷이야기
- 1943년, 웨일스와 잉글랜드의 친선 경기가 있었고 경기는 잉글랜드가 8대3으로 대승을 거뒀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특이한 점이 하나 나왔는데 모텐슨은 원래 잉글랜드 쪽 선수였지만 웨일스의 인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이보르 포웰이 부상을 입자 잉글랜드가 교체 명단에 있던 모텐슨을 웨일스에 빌려준 것이었다. 모텐슨이 포웰을 대신해서 피치에 들어서자 웨일스 팬들은 포웰이 심한 부상으로 경기에 빠졌다는 것을 모른 채 포웰이 다시 뛰는 줄 알고 환호했다. 하프 타임까지 선수가 바뀐 것을 눈치챈 사람은 소수였고 일부 잉글랜드 선수들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 스탠리 매튜스는 여기에서 모텐슨이 경기의 흐름을 바꿨다는 회고를 남겼다.
5. 수상
5.1. 클럽
5.2. 개인
- 잉글랜드 1부 리그 득점왕 1회: 1950-51(블랙풀 FC)
- 잉글랜드 풋볼 명예의 전당 헌액: 2003
- 블랙풀 명예의 전당 헌액: 2006
[1] 현재는 타인 위어주 소속[2] 이 기록이 작성될 때 모텐슨이 부상으로 빠지긴 했지만 현재까지 잉글랜드 리그 내 최다경기 연속 득점 기록이다. 프리미어 리그 시기만으로 한정하면 제이미 바디의 11경기가 최다이다.[3] 일부 블랙풀 팬들은 해트트릭을 기록한 모텐슨의 활약이 더 위라고 주장하며 모텐슨 파이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