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15:30:27

대중독재

시민독재에서 넘어옴


1. 개요2. 사례

1. 개요

Mass Dictatorship,

시민독재라고도 하며, 말 그대로 대중에 의한 독재를 의미하는 용어다.

독재가 위로부터의 억압이 아닌 민중의 직접적 혹은 암묵적 동의 아래 이뤄진 것이라는 이론으로써의 뜻이 있다.

기본적으로 근대 민주주의의 사상적 토대인 ‘국민주권론’에 대한 회의를 담고 있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독재 비판자들은 대중독재를 막기 위해서는 정치적 다원주의와=[1]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용적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강대 사학과의 임지현 교수는 20세기의 많은 현대국가에서 사실상 왕정과 같은 수준의 독재 체제가 무조건적인 억압이 아닌 어떤 계기를 통해 모인 '대중의 동의'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치당의 민족동지 개념, '산업전사'를 옹호한 박정희 정부의 개발 독재 방식, 끊임없이 주변국의 정세불안과 안보위기를 부각시켜 반대파를 무력화시키고 독재를 합리화하는 김정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장기집권, 현대의 제도적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핍박도 대중독재에 기반한 사례로 평가했다.#

사람들은 보통 다수의 지지를 얻은 권력은 독재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대중독재 이론에서는 다수의 지지를 얻은 권력이 독재의 본질이라고 본다

대중독재 이론은 독재가 대중의 동의를 받게 된 과정에 집중한다. 나치 독일, 스탈린 체제, 박정희 군부정권, 일본 군국주의, 제3세계의 장기집권 정부 등 독재 혹은 전체주의라 불리는 수많은 권력들이 대중의 지지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위정자들은 대중을 끊임없이 국민화시키려고 하며 상징, 영웅숭배, 선전 등을 통해 정치를 종교화하여 헤게모니를 손에 쥐려고 한다.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독재는 존립하지 못하게 자멸하게 된다. 이 점에 봉건왕정과 근대 독재의 차이점이라고 대중독재 이론가들은 지적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대중과 다수가 정말 순수한 대중과 다수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특히 보수적인 가부장제와 연결되기 쉬운 대중주의는 과거 영지개념에서 가족단위로 통제가 들어가는 마이크로 봉건제처럼 굴러가기 때문이다. 가부장제가 강력한 사회일수록 지켜야 할게 많은 가장 1명의 정치이념이 가족 전체를 지배하기 쉽고 1000명의 사원을 거느린 기업의 정치이념이 기업을 지켜야할 오너 1명의 정치이념으로 결정되는 구조가 되어 권력자가 자기 하위의 권력자를 계약형태로 통제하고, 소권력자가 가장들을 계약형태로 통제하는 계단식 봉건제와 지배구조 차이가 전혀 없으면서 이름을 대중독재로 지어 이를 마치 공산주의의 이념인 것처럼 착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대중독재 이론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는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봉건제와는 달리 근대의 독재체계는 대중의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권력을 얻으며, 대중독재는 봉건제와 근대 대중독재의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에 중점을 둔다.

2. 사례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좀 더 최근을 보자면 트럼프주의[2]를 비롯한 대안 우파, 일본의 넷우익이나 중국의 분청 등을 연결짓기도 한다. 혐오인권 탄압이 대중, 심지어 민주주의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기도 하고 과거와 달리 대중에 기반을 둔 우경화 바람이 거세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에서는 과거에도 파시즘, 나치즘이라는 강력한 대중주의적 우익 운동의 역사가 있으나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대중 중심의 근대적 우익운동은 이전까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3]
[1] 소위 방어적 민주주의에 대한 의견은 대중독재 비판자라고 해서 다 같지 않다. 진보적 헌법학자들은 방어적 민주주의 자체가 사실상 보수우익적 이데올로기이며 반공주의와 나치 만행 물타기에 빠져 있던(60년대 이전의 독일은 지금과 달랐다) 당시의 독일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고 본다. 보수적 입장에서의 대중독재 비판자들은 '방어적 민주주의'의 강화를 지지할 수 있으며, 헌법재판소의 '현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불순한 정당을 해산하는 등 대중독재를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진보적 입장에서 대중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평등, 인권, 소수자 보호를 위한 제도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지 '방어적 민주주의'의 확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2] 임지현은 트럼프주의를 대중독재와 연결지었다.[3] 예외적으로는 문화대혁명이 있으나 이것도 홍위병을 마오쩌둥이 적절히 이용했다가 처분한 것이지 마오쩌둥의 권력이 거기에 기반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일부 홍위병들은 마오쩌둥까지 비판했다. 엄밀히 말해서 문화대혁명은 극단적 국수주의 같은 극우 성향이기보다는 문화 파괴 같은 극좌적 방향으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