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5 12:29:02

시에나의 카타리나

파일:external/catholicharboroffaithandmorals.com/St.%20Catherine%20of%20Siena%20Weninger%2003.jpg

오, 성령님.
제 마음에 오시어 당신의 힘으로 저의 마음을 참 하느님이신 당신께 이끄시고,
놀라운 사랑으로 저를 받아주소서.
저를 모든 악한 생각에서 보호하시며, 어떤 고통도 가벼운 것으로 여길 수 있도록
당신의 지극히 너그러운 사랑으로 저를 뜨겁게 하시고 불타게 하소서.
거룩하신 아버지, 자비로우신 저의 하느님이여, 모든 어려움에서 저를 도우소서.
사랑이신 그리스도님, 사랑이신 그리스도님.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기도
1347년 3월 25일 ~ 1380년 4월 29일

가톨릭성녀. 성공회루터교회에서도 성녀로 추대된다. 이탈리아 시에나 출신으로 본명은 카테리나 베닌카사(Caterina Benincasa). 신비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비공식적으로 오상을 받은 성인 중 하나다. 축일은 4월 29일. 성화는 대부분 가시관[1]을 쓰고 오상으로 고통받거나 십자고상이나 백합을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카타리나는 6살의 나이에 자신의 생애를 미리 보는 체험을 한 뒤, 홀로 기도생활을 하여 16세에 도미니코회 3회원이 되었다. 그녀는 환시를 자주 보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으로부터 모략을 받았으나, 자신의 고향에서 꿋꿋이 봉사활동을 하였다. 1375년 카타리나는 피사에서 오상을 받고, 크게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당시 본 환시 속의 예수가 "지식과 은총의 웅변을 줄 것이니 여러 나라를 다니며 권세가와 지도자들에게 나의 소망을 전하라" 했던 명령을 따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고위 지도층과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사치와 향락에서 벗어나 평화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카타리나는 십자군 전쟁을 준비하는 교황 그레고리오 11세를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아비뇽 유수에 종지부를 찍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그레고리오 11세의 죽음 후 대립교황이 난립하며 가톨릭 교회가 분열하려 하자 우르바노 6세 교황을 지지하여 교회의 화합을 추구했다.

1461년 6월 28일 교황 비오 2세에 의해 시성되었고, 1940년 5월 15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함께 이탈리아수호성인이 되었으며, 1970년 4월 4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카타리나는 로마에서 33세를 일기로 죽었다. 그녀의 시신은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묘지에 매장되었다가 성당 내부로 이장되었는데, 유해에서 분리된 머리는 부패하지 않은 채 시에나에 있는 산 도미니코 성당에 안치되었다.

성해의 머리 사진 놀랄 수 있으니, 열람시에 주의할 것!


[1] 예수십자가에 못 박힐 때 썼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