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민선1기 | 민선2기 | 민선3-4기 | ||
41대 전광순 | → | 42대 신정 | → | 43-44대 김용수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middle; margin-right:10px"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81818,#e5e5e5 | 포항 | 경주 | 구미 | 김천 | 안동 |
정장식 | 이원식 | 김관용 | 박팔용 | 정동호 | |
경산 | 영주 | 영천 | 영양 | 문경 | |
최희욱 | 김진영 | 박진규 | 이여형 | 김학문 | |
예천 | 군위 | 고령 | 상주 | 칠곡 | |
김수남 | 박영언 | 이태근 | 김근수 | 최재영 | |
의성 | 청송 | 성주 | 울진 | 영덕 | |
정해걸 | 박종갑 | 김건영 | 신정 | 김우연 | |
청도 | 봉화 | 울릉 | |||
김상순 | 엄태항 | 정종태 | |||
민선 1기 / 민선 3기 / 민선 4기 / 민선 5기 / 민선 6기 / 민선 7기 / 민선 8기 | }}}}}}}}}}}}}}} |
{{{#!wiki style="margin: -7px -10px -10px;" {{{#!wiki style="margin: -6px 0px -1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00AA7B><tablebgcolor=#00AA7B> | }}} {{{#!wiki style="margin: -5px -2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00AA7B><tablebgcolor=#00AA7B>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 노현송 | 김희철 | 박원철 | 반상균 | 임익근 |
유덕열 | 노승환 | 고재득 | 허완 | 김동일 | |
정진택 | 이익진 | 김창수 | 박수묵 | ||
신원철 | 김홍섭 | 김선흥 | 조건호 | 이성환 | |
백재현 | 박종진 | 박영순 | 김윤주 | 유정복 | |
방제환 | 원혜영 | 김병량 | 박성규 | 윤명노 | |
박용국 | 유관진 | 예강환 | 강상섭 | 유승우 | |
송달용 | 손영채 | 배계섭 | 김태수 | 김원창 | |
이수환 | 나기정 | 류봉렬 | 이상선 | 송병태 | |
박종철 | 김재균 | 곽인희 | 김완주 | 김세웅 | |
최규환 | 김상두 | 임수진 | 김대동 | 권이담 | |
신준식 | 윤영수 | 류상철 | 고현석 | 전경태 | |
하승완 | 최공인 | 김봉열 | 김철호 | 차관훈 | |
김흥식 | 김재종 | 박승만 | 이석형 | 민화식 | |
임흥락 | 신정 | 강기권 | }}} }}}}}} |
申丁
1942년 3월 7일 ~ ([age(1942-03-07)]세)
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2. 생애
1942년 3월 7일 강원도 울진군 원남면(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에서 태어났다. 울진매화초등학교, 울진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제20기를 졸업하였다.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제5공수특전여단장, 제53보병사단장, 제2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다.
육군 소장으로 예편 후 기업인으로 지내다가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여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상북도 울진군수로 출마하여 한나라당 전광순, 무소속 정일영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이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포항시장에 당선된 박기환 전 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대구경북 지역에서 민주당 당적으로 기초자치단체장이 당선된 사례이다.[1] 당시 지역 유력 인사이자 정권실세로 평가받던 김중권 전 의원이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러나 2000년 9월에 광산개발 허가와 관련해 광업소 대표에게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후 2000년 10월 6일 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2001년 4월 7일 끝내 기소되었고,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으며 법정구속되었고 2심에서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비록 이후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취지로 파기 환송되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사건에 여파가 컸기에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는 출마를 하지 않았다.[2] 결국 임기를 다 채우는 데는 성공했으나, 2002년 10월 31일 파기환송된 재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본인이 더 이상의 상고를 포기하며 피선거권을 상실했다.
이후 기업인으로 지내다가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고 피선거권을 회복한 후[3]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경상북도 울진군수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용수 후보에 밀려 낙선 하였다. 그래도 다른 열린우리당 TK 지자체장 후보들과 달리 31.98%로 선전했다.
낙선 이후 별 다른 소식이 없으며, 뉴스에서 간간히 지방선거철에 TK 지역 역대 민주당 계열 기초단체장에서 언급하는 게 전부.
3.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8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경북 울진군수 | [[새정치국민회의| | 17,593 (48.28%) | 당선 (1위) | 초선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열린우리당| | 10,306 (31.98%) | 낙선 (2위) |
[1] 그리고 이 이후로 민주당은 TK지역에서 오랜 암흑기를 겪다가 20년 만인 201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보수의 심장인 구미시에서 장세용을 시장으로 당선시키는 쾌거를 이뤄냈다.[2] 본인은 보석을 통해 석방된 후 입후보 서류를 받아가는 등 출마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보이나, 끝내 후보 등록을 하지는 않았다.[3] 2004년 공직선거법 개정 전까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2조 (뇌물죄의 가중처벌)로 처벌받아도 형 집행이 종료되면 바로 피선거권을 회복하는 구조였다. 이후 2004년 3월 12일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형 집행 종료 후에도 일정 기간(100만원 이상 벌금의 경우 5년 간, 집행유예나 징역의 경우 종료 후 10년 간) 피선거권이 제한되도록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