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자란(沈紫鸞)
심자란(沈紫鸞, 1725년 12월 30일 ~ 1742년 6월 20일)은 조선 후기의 예인으로, 본관은 울산부 서부이며, 아버지는 울산부의 아전 심대연(沈大淵), 어머니는 관기 초경(楚京)이다. 어린 나이부터 울산 병영교방(兵營敎坊)에서 음악을 배워 뛰어난 거문고 연주와 노래 실력으로 이름을 얻었다.
1.1. 생애
1725년(영조 원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울산부사 권상일(權相一)의 배려로 울산 병영교방에서 의아(義娥)를 스승으로 거문고와 노래를 배우며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았다.1738년, 14세 때 경상좌도 병마우후 윤면일(尹勉一)을 만나 그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1739년 윤면일이 울산 부사직을 겸임하자 자란을 처소에 두고 서울로 데려갈 계획을 세웠으나, 1740년 윤면일의 승진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천의 친척 집에 자란을 맡겼다.
1741년 윤면일이 서울에서 병으로 급사하자 자란은 상례를 극진히 치렀고, 애절한 마음을 다해 슬픔을 표했다. 이후 울산의 새 부사 정광운(鄭廣運)이 자란을 억지로 관아로 불러들여 위협하고 강요했으나, 자란은 이를 끝까지 거부하고 스스로 곡기를 끊어 1742년(영조 18년) 1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자란의 죽음 후인 1743년 겨울, 윤면일의 아들 윤수검(尹守儉)이 울산으로 와 자란의 무덤에서 곡하며, 그녀의 부모에게 빚을 갚기 위한 자금을 전달받아 돌아갔다.
1.2. 평가와 기록
울산 부사 윤지태(尹志泰)가 자란의 절개와 예술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상체헌 박민효(朴敏孝)에게 그 생애를 기록하게 하였고, 『상체헌집(常棣軒集)』에 '자란전(紫鸞傳)'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자란은 뛰어난 예술적 기량과 불행한 삶 속에서도 의로움과 절개를 지켜낸 인물로 평가받으며, 울산 지역의 최초의 예인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1.3. 주요 기록
『상체헌집(常棣軒集)』 「자란전(紫鸞傳)」 (박민효 저)
1.4. 사진 자료
심자란 영정 사진 (출처: 이선숙판소리연구소)
『상체헌집』 원본 자료 사진 (출처: 울산박물관 소장)
1.5.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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