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9 19:59:23

아르노 아마니외 달브레

성명 아르노 아마니외 달브레
Arnaud-Amanieu d'Albret
생몰년도 1338년 8월 4일 ~ 1401년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가스코뉴 알브레
사망지 프랑스 왕국 알브레
아버지 베르나르 2세 달브레
어머니 마테 다르마냐크
아내 마르그리트 드 부르봉
자녀 샤를 달브레, 루이 달브레, 마르그리트 달브레
직위 알브레 영주, 드뢰 백작, 타르타 자작, 드 마랭 자작, 닥스 자작, 드 네라크 영주, 프랑스 대의원
1. 개요2. 생애3. 가족

[clearfix]

1. 개요

가스코뉴 공국 알브레 가문의 일원. 백년전쟁 초기엔 잉글랜드 왕국을 지지했지만, 1368년부터 프랑스 왕국을 지지했다.

2. 생애

1338년 8월 4일 알브레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베르나르 2세 달브레는 가스코뉴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알브레 가문의 일원이었다. 어머니 마테 다르마냐크는 아르마냐크 백작이자 프랑스 무관장으로서 발루아 왕조를 위해 이탈리아와 플란데런 백국에서 활약했던 베르나르 6세 다르마냐크의 딸이다. 베르나르 2세는 친 잉글랜드파 인사로, 그의 아들을 초대 켄트 백작이자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의 여섯번째 아들인 우드스톡의 에드먼드의 딸과 결혼시키려 했지만 무산되었다.

백년전쟁 초기, 그는 잉글랜드군을 위해 싸웠다. 1351년 2월, 멜로 영주 기 2세 드 네슬과 부관 아르눌 도드랭이 이끄는 수천 명이 프랑스군이 잉글랜드 수비대 600명이 주둔하고 있는 생당젤리 요새를 포위하고 요새로 이어지는 모든 보급로를 차단했다.(생장당젤리 공방전) 수비대는 몇 달간 결연히 버텼지만,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굶주림에 시달렸다. 이 소식을 접한 그는 가스코뉴 세네샬 존 드 체버스턴과 함께 생장당젤리를 구원하기 위해 수백 명의 부대를 이끌고 출진했다. 이들은 수적으로 열세했기 때문에 적 포위망을 뚫을 생각은 없었지만 수비대에 물자를 보급하고자 노력했다. 적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기 2세 드 네슬은 일부 병력를 남겨서 계속 포위하게 한 뒤 대다수 병력을 이끌고 이들을 요격하러 출진했다.

1351년 4월 1일, 기 2세 드 네슬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생트 마을에서 약 3마일 떨어진 도로에서 잉글랜드군을 요격했다. 잉글랜드군 기사들은 즉시 말에서 내려 고지로 올라가서 전투 대열을 형성하고 말을 후방으로 이끌었다. 네슬은 양 측면의 소규모 기병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사들에게 말에서 내리게 한 뒤 고지를 에워싸서 공세를 펼쳤다. 그리하여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인근의 타이르부르와 토네-샤랑트의 잉글랜드 수비대에서 분리된 수백 명의 잉글랜드군이 프랑스군 후방을 공격했다. 이에 전의를 급격히 상실한 프랑스군은 패주했고, 600명 가량의 프랑스 기사가 죽거나 사로잡혔다. 기 2세 드 네슬과 아르눌 도드랭 역시 사로잡혔다가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다.

1358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알브레 영지를 물려받았고, 1363년 7월 9일 보르도 대성당에서 아키텐 공작 취임식을 거행한 흑태자 에드워드 앞에서 벨트와 모자를 쓰지 않고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한 뒤, 성경십자가에 입을 맞춘 뒤, 왕자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1367년 흑태자 에드워드가 페드로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국왕에 복위시키기 위한 원정에 참여해, 그해 4월 3일 나헤라 전투에 참전해 승리에 기여했다.

1368년 흑태자 에드워드가 이베리아 원정 이후 막대한 군자금을 소모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난로세를 강제 징수하자, 이에 반감을 품고 외삼촌인 장 1세 다르마냐크를 비롯한 아르마냐크, 페리고르, 코밍즈 영주들과 함께 프랑스 국왕 샤를 5세에게 항소했다. 샤를 5세는 이 기회를 이용해 가스코뉴를 프랑스에 귀속시키기로 마음먹고, 1368년 5월 20일 자신의 친척이자 피에르 1세 드 부르봉의 딸인 마르그리트와 그를 결혼시켰다. 6월 30일, 그는 다른 영주들과 함께 샤를 5세와 비밀 협약을 맺었다. 이에 따르면, 그들은 프랑스 국왕의 가신으로서 충성을 맹세했고, 그 대가로 현재 가지고 있는 영지를 인정받으며,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

1369년부터 흑태자 에드워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고 샤를 5세의 아키텐 원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1382년, 필립 반 아르테벨데가 주동한 플란데런 백국 반란 진압에 투입되어 그해 11월 27일 로즈비크 전투 승리에 기여했다. 그는 공적을 인정받아 프랑스 대의원에 선임되었다. 1401년에 사망했다.

3.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