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Bataille du pont d'Arcole
이탈리아어: Battaglia del Ponte di Arcole
영어: Battle of the Bridge of Arcole
전투장소가 이탈리아의 도시인 아르콜레인 만큼 한국어로 표기한 명칭은 아르콜레 전투 내지 아르콜레 다리 전투가 올바른 표현이다.
나폴레옹 전쟁의 최초 국면으로 분류되는 이탈리아 원정을 상징하는 전투 중 하나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요세프 알빈치가 이끄는 오스트리아군이 방어 중이었던 아르콜레 지역을 가까스로 돌파한 전투다.
이 과정에서 많은 병사들과 장교들이 부상당했는데[1] 부상당한 장교들 중 훗날 프랑스의 원수가 되는 여단장 장 란도 끼어있었다.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직접 군기를 들고 척탄병들과 돌격하는 상황을 담은 그림이 많다. 아래의 영화 장면에서도 이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을 각색한 것으로 나폴레옹이 삼색기를 들고 강둑에 서서 병사들을 독려하긴 했으나 돌격의 일선에 섰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적의 포화가 대놓고 떨어지는 강둑에 섰다는 것 자체가 매우 용감한 동시에 위험한 행동이었고, 당연히 나폴레옹을 향해 오스트리아군의 집중포화가 떨어졌다. 그의 직속 부관 한 명이 전사하고 몇 명은 부상당했으며, 나폴레옹 본인도 죽을 뻔 했으나 부하 중 한명이 나폴레옹을 억지로 강둑에서 끌어내려 구덩이에 쳐박아준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 친구이자 휘하 여단이었던 장 란이 돌격하다 부상당해 후송용 마차에 실려가던 중 패전소식을 듣고는 달려나와 나폴레옹을 구원하고 다리를 점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이는 야사로 당시 란이 부상에도 불구하고 다시 전투에 나간 건 사실이지만 위의 야사 같은 행동은 벌이지 않았다. 한가지 확실한 건 척탄병들은 지휘관이 나폴레옹이든 란이든간에 돌격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프랑스군은 오히려 오스트리아군에게 밀려났지만, 이전에 나폴레옹의 명령을 받고 나룻배를 타고 다리를 우회하여 도강한 기외 장군의 여단이 그날 저녁 다리 반대쪽의 오스트리아군을 기습하면서 아르콜레 다리와 마을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튿날, 북서쪽에서 또다른 오스트리아 군대가 접근하자 나폴레옹은 그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아르콜레 다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다리는 전투 3일차에 도착한 마세나의 증원을 받아 간신히 탈환할 수 있었다.
[1] 좁은 다리를 돌파해야되다보니 많은 병력이 퇴각도 어려운 좁은 지점에 몰리게 되고, 결국 상대 입장에서는 노리기 좋은 목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