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아르투로 아리에타 (Arturo Arrieta) |
생년월일 | 1911년 7월 12일 |
사망년월일 | 불명 |
국적 | 아르헨티나 |
출신지 | 아베야네다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레프트 포워드 |
신체조건 | 불명 |
소속팀 | CS 바라카스 볼리바르 (1925-1927) CA 산 로렌소 (1927-1940) |
국가대표 | 5경기 / 1골 (1933-1935) |
감독 | CA 올 보이스 (1946-1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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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아리에타의 데뷔 기록은 1925년과 1927년의 두 가지로 나뉜다. 1925년 5월 4일에 데뷔했다는 기록으로 미뤄보면 그는 만 13세에 아르헨티나 1부 리그에 데뷔했다는 이야기로 이는 15세 11개월에 데뷔한 마라도나의 기록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물론 1927년 데뷔라고 해도 마라도나의 기록보다 더 빠를 가능성은 충분하다.하지만 이 전도유망한 포워드는 여러 불운으로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했다. 24살에 그의 11형제 중 살아남은 사람이 불과 4명이었을 정도. 특히 22살에 겪은 막냇동생의 사망은 아리에타를 매우 힘들게 했다. 1937년 무렵엔 이 불운들에 못 이겨 아예 은퇴를 선언했다가 리저브팀을 거쳐 복귀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계속되는 부상으로 인해 1939년에 축구화를 벗게 되었다.
2.1.2. 국가대표
아리에타의 알비셀레스테 데뷔는 1933년 12월 14일 우루과이를 1대0으로 이긴 경기였다.1933년과 1935년 사이에 아리에타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5번 출전했고 1935년 1월 6일의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 칠레를 4대1로 꺾을 때 1골을 넣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아리에타는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선수라는 평가까지 받지는 못했지만 효율적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데 능했다. 또한 출전하면 기복이 거의 없는 선수였다.그의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는 디에고 가르시아와 좋은 공격 옵션 조합을 이뤘다.
4. 뒷이야기
- 아리에타는 선수 시절에 팀 동료들과 와이너리를 경영했다.
- 2014년 11월, Grupo Artístico Boedo는 1936년 아너 컵에서 있었던 아리에타의 활약을 벽화로 그렸다. 벽화에는 디에고 가르시아와 함께 남게 되었다.
5. 수상
5.1. 클럽[2]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3회: 1927, 1933 LAF, 1936 Copa de Honor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3회: 1931 LAF, 1936 Copa Campeoneto, 1936 Copa de Oro
5.2. 국가대표
-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