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09 10:24:30

아미그달린

1. 개요2. 특징 및 섭취3. 항암제 주장과 논란
3.1. '항암제' 주장의 내용3.2. '항암제' 주장 반박

1. 개요

파일:아미그달린.svg
아미그달린(Amygdalin)은 살구·복숭아 등의 핵과류 과일의 씨앗에 함유되어 있는 청산 화합물(사이안 배당체)이다. 일부 대체의학에서는 '비타민B,17,' 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인체에 필요한 비타민 B 복합체의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인공 합성한 아미그달린 결정을 '레트릴(Laetril)' '레트라일' 등의 명칭으로도 부른다.

2. 특징 및 섭취

흔히 "사과 씨앗에 들어 있는 청산염", 혹은 "청산가리에서 야생 아몬드 냄새가 난다"는 표현으로 유명하다. 아미그달린은 살구, 복숭아, 앵두, 매실, 자두, 아몬드 등 장미과 벚나무속 열매의 씨앗들과 사과의 씨앗, 은행에 들어 있다.

아미그달린은 청산 화합물로 청산가리와 매우 가까운 물질이다. 수분과 합쳐지면 분해되는 과정에서 500mg당 최대 30mg의 HCN(사이안화 수소)를 생성한다. 사이안화 수소에서 발생하는 시안화이온(CN-)에 중독될 경우 연수가 마비되고, 조직의 질식이 유발되어 사망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씨앗들을 일부러 먹을 일은 없는데다 대개 약이나 식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가열하거나 물에 불리고 설탕에 재우는 등의 방법을 거치므로 이 과정에서 휘발성인 아미그달린이 거의 사라져 실제 치사량 수준으로 섭취할 일은 많지 않다.

생 씨앗을 접하기 쉬운 사과는 성인 기준으로 하루 사과 20개 분량의 씨앗을 먹어야 위험한 수준에 이르는데 이렇게 먹을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위험성이 가장 잘 알려진 은행의 경우 볶을 때 아미그달린이 많이 날아가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 10~20개 정도의 분량이 적당하다. 아몬드의 경우 쓴 맛이 나는 야생 아몬드가 위험하며 일반적으로 접하는 식용 아몬드에는 아미그달린이 없거나 극미량만 들어있으며 볶아서 유통되기 때문에 특별히 위험하지 않다.

매실은 아미그달린이 과육과 씨앗 모두에 들어있어 그냥 먹기 보다는 보통 청이나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데 특히 청매실이 황매실에 비해 아미그달린 함량이 훨씬 높아 주의해야 한다. 매실청을 만들 경우 담근 후 3개월 정도 지나면 매실청에 아미그달린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그냥 먹지 말고 매실만 건져낸 후 숙성시켜 1년 정도 후에 먹는 것이 좋다. 만약 빨리 먹으려면 매실만 건져내 한 번 끓여서 식힌 후 먹거나, 물을 첨가해 당도를 낮춰 발효액으로 만들어 먹는 방법도 있다. 또한 매실청은 보통 희석해서 섭취하기 때문에 위험한 수준으로 먹기는 어렵다.

소량의 아미그달린은 복용했을 때 HCN이 호흡 중추에 작용해 호흡 운동을 안정시켜 진해, 평천작용을 나타내므로 예로부터 민간 요법으로 활용되어 왔다. 한의학에서도 아미그달린이 포함된 행인(살구씨), 도인(복숭아씨) 등은 독이 있다, 혹은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날것으로 사용하지 않고 밀기울과 함께 볶아서 쓰도록 되어 있다.

과거에는 보신탕 가게에서 카운터에 살구씨(행인, 杏仁)를 갖다 놓고 손님들이 나갈 때 집어먹을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했는데, 씹는 맛이 있고 특유의 향기가 있었다. 당시 보신탕집에 살구씨를 둔 이유는 살구를 한자로 쓰면 '殺狗'가 되어 '개를 죽일 만큼 독성이 강하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즉 개와는 서로 상극이 된다는 점에서 개고기를 먹고 난 후 소화를 돕는다는 의미로 그렇게 한 것이다. 상술했듯 살구씨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면 10개쯤 먹어도 괜찮지만, 역시 독성이 있으므로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3. 항암제 주장과 논란

아미그달린은 최근에 와서 "암세포 억제에 도움을 준다"며 대체의학계에서 항암 요법으로 광고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다. 만약 이 물질이 정말로 항암 효과가 있었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현재 사용되는 거의 대부분의 항암제 또한 극독성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치명적인 독성이 있어도 치료에 필요하다면 써야 할 경우가 있다. 일례로 비소는 맹독성 물질이지만 비소 화합물은 매독 치료 등으로 역사에 자주 등장한다. 정말로 효과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쓸 일은 생긴다.

그런데 왜 항암 치료제가 아니고 비타민인가? 그 이유는 이렇다. 크렙스 박사라는 사람이 자두씨에서 항암 성분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추출했고, 그 아들이 추출하는 방식을 바꾸면서 '레트릴'이라고 이름 붙인 건데, 이게 의약품으로 사용되려면 까다로운 임상시험을 거쳐 FDA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비타민B17, 즉 영양제로 허가 없이 판매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중에 몇몇 사람은 이 물질을 팔아먹기 위해서 존 버치 소사이어티[1]나 전미보건연합[2]을 동원해 '의료 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대체 의학 옹호 운동을 벌이게 되었고, 이 와중에 영화배우 스티브 맥퀸이 말기암에 걸리면서 대체요법을 찾는 와중에 아미그달린을 정맥 주사하는 '레트릴 요법'을 사용한다. 결국 법원에서는 일시적으로 말기암이라는 진단서를 의사가 끊어주기만 한다면 FDA의 허가를 받지 않은 약품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고 몇몇 주에서는 레트릴 판매를 일시적으로 허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간이 끝날 때쯤에 레트릴의 판매 허용이 취소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항암효과가 전혀 없었다. 암세포 억제에 도움을 준다고 하는 것은 주장일 뿐이고, 관련 연구중 제대로 된 건 없다시피 하다. 비타민B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전술한 스티브 맥퀸도 레트릴로 치료를 시도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레트릴은 암환자들의 돈을 노린 사기 중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아미그달린 또는 레트릴 관련 유사과학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3.1. '항암제' 주장의 내용

아미그달린의 항암효과를 처음 주장한 사람은 "자두씨를 민간요법으로 쓰는 데서 착안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애초에 아미그달린이 아니라 벤젠알(benzenal, 벤즈알데히드benzaldehyde)을 발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미그달린은 가수분해하면 포도당과 벤젠알로 분해된다. 분해되면서 휘발성이고 상온(26℃)에서 기화하는 시안화수소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벤젠알이야 그냥 흔한 방향족 알데히드[3]고, 항암이 꼭 아니더라도 몸에 좋은 식물성 향수 정도이므로 아무렇든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현대에 주장되는 '아미그달린 항암제설(비타민설)'은 멀쩡한 벤젠알을 씹어드시고 놀랍게도 시안화수소의 효능에 주목하고 있다.요지는 아미그달린이 분해될 때 내놓는 시안이온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인다는 이야기.

그들의 주장은 암세포와 정상세포 간에 효소 농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는 배당체 분해효소(glucosidase)가 있어서 아미그달린이 들어오면 포도당과 벤젠알을 내놓고 시안기를 떨어뜨린다. 하지만 한편 로다네제(rhodanese)라는 효소가 있어서 시안이온(CN⁻)을 티오시안이온(SCN⁻)으로 해독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그런데 두 효소의 농도 차이가, 암세포의 선택적 삭제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암세포는 혐기성 호흡을 하기 때문에 포도당이 많이 필요한데, 그 때문에 글루코시다아제를 일반 세포에 비해 과량으로 분비한다고 한다. 그러면 시안이온은 암세포의 부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지만, 암세포는 로다네제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시안이온으로 죽게 된다는 주장이다.

3.2. '항암제' 주장 반박

물론 극미량의 시안이온은 체내에 들어와도 로다네제에 해독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해독을 하려면 티오황산이온이 필요한데, 애초에 시안이온을 먹었다고 할 수준이면 청산중독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해독제인 티오황산이온도 먹어줘야 할 거 아닌가. 하지만 소위 아미그달린요법을 한다는 사람들이 티오황산나트륨이라도 같이 먹어가면서 그러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또 "암세포는 혐기성 호흡을 한다"라는 전제하에 치료효과를 주장하고 있는데 시안화물의 독성은 혈중 산소가 사용되지 못하게 세포호흡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시안이온 때문에 세포가 질식해서 죽는 것. 그런데 암세포는 애초에 혐기성 호흡을 한다. 즉 시안이온에 죽는 것은 정상세포 뿐, 암세포는 죽을 이유가 없고 오히려 암세포가 좋아할 선택이다.


[1] 모르몬교 계열 극우 단체로, 국내에는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나름대로 악명이 있다. KKK처럼, 가입 자체가 욕먹을 만한 곳.[2] 개인이 만든 이름만 거창한 단체이다.[3] 알데히드가 모두 독성이라는 것은 틀린 서술이다. 탄소수가 6~12개인 알데히드는 향수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