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19 15:53:15

아오노 타케시(1983)


이름 아오노 타케시(青野毅/Takeshi Aono)
생년월일 1983년 1월 12일([age(1983-01-12)]세)
출신지 가고시마현 미나미사츠마시[1]
포지션 3루수[2]
투타 우투우타
학력 슈난고교
프로입단 2000년 NPB 드래프트 5라운드 지명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 (2001~2013)
등장곡 나가부치 츠요시 - 気張いやんせ
응원가 Peach Jam - 手紙 [3]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2010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경력
2.2.1. 2006 시즌2.2.2. 2007 시즌2.2.3. 2008~2009 시즌2.2.4. 2010~2013 시즌
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성적5. 기타

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소속 야구선수. 주 포지션은 3루수였으나 드래프트 1년 후배 이마에 토시아키에 밀려 고정된 자리를 얻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다가[4] 잦은 부상 때문에 백업자리마저 놓치고 일찍 선수생활을 마친 비운의 거포 유망주였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고교 시절에는 투수 겸 팀내 4번 타자로서 고시엔에도 진출했다. 타자 포지션은 외야수였고 투수뿐만 아니라 외야수로서의 평가도 높았다

2000년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로 치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했다. 이때의 포지션은 투수였다.

2.2. 프로 경력

입단 하자마자 2001년에 바로 야수로 전향했고, 2005년까지 5년 간은 2군에서만 생활하면서 2002년에 1군 경기에 딱 한 타석에만 들어선게 전부였다. 장타력이 좋아서 거포~중장거리포 정도의 활약이 기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군에 올라갈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2군에서는 꾸준히 성장하여 2005년에는 2군에서 팀 최다인 92경기에 출전해 타율 .286에 7홈런 10도루를 기록하였다.

2.2.1. 2006 시즌

다음해인 2006년에는 4월 15일에는 호리 코이치 대신 1군에 콜업되었다. 그 날 바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전에서의 2번 타자 3루수로 출전하였고, 9회에는 프로 첫 안타를 때렸다. 6월 14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전 4회말에 나스노 타쿠미로부터 프로 데뷔 홈런을 쳤다. 또한 7월 1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2회말 다노우에 케이사부로로부터 프로 2호 홈런을 쳤다. 공교롭게도 프로 데뷔 홈런과 2호 홈런 모두 만루홈런이었다. 이 해에는 주로 이마에 토시아키에 밀려서 2루수로 뛰었다. 그러나 간간히 1루, 3루, 외야 등에도 출장하며 자리를 엿보고 있었다.

2.2.2. 2007 시즌

2007년 시즌 초반에는 4할 타율을 찍는 등 초반에는 타격왕 경쟁까지 할 정도로 페이스가 좋았다. 그러면서 이마에 토시아키가 5월 때 부상으로 한동안 결장하면서 생긴 3루수 주전 자리를 노리기까지 했지만 시즌 후반에 결국 본인도 손목과 어깨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상당 경기를 결장해야 했다. 또한 이 시즌에 70경기 좀 넘게 뛰면서 10홈런을 치며 거포로서의 가능성을 보았다. 만약에 풀 시즌을 뛰었으면 20홈런도 가능한 페이스였으나 부상으로 풀타임을 뛰지 못했다.

2.2.3. 2008~2009 시즌

어깨 부상의 장기화로 2년 동안 재활만 했다. 2009년에는 시즌 후반에 2군 경기엔 출장했지만 1군엔 못 올라왔다.

2.2.4. 2010~2013 시즌

다시 1군에 올라오는 데 성공했지만 4시즌 동안 34경기에서 1홈런을 친 게 끝. 2013년에는 아예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시즌 종료 이후 전력외통보를 받았다.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에 나갔지만 불합격하며 결국 은퇴했다.

그래도 2010년 일본시리즈에 출전하면서 우승반지를 획득했다. 센트럴리그 홈 경기라서 투수도 타석에 들어설 때 투수의 대타로 주로 나왔다.

3. 플레이 스타일

고교 시절에는 투타겸업을 하면서 고시엔까지 출장했던 선수였고 프로에서는 장타력을 가진 전형적인 우타거포 자원. 그러나 거포 유망주들 못 키워내기로 유명한 치바 롯데 마린즈+주 포지션인 3루수에 이마에 토시아키라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존재[5]+잦은 부상 등으로 프로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포수 빼고 다 평타 이상의 수비력을 자랑했기 때문에 몸만 건강했어도 다른 포지션을 노려볼 수 있었겠지만 롯데의 내야는 다른 포지션도 유격수에 니시오카 츠요시, 2루에는 이구치 타다히토 등의 주전들이 탄탄했다.

장타력은 반 시즌 만 뛰고도 10홈런을 칠 정도로 치바 롯데 내 선수들 중에서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선구안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스윙을 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선풍기 성향이 강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사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1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기록 없음
2002 1 1 .000 0 0 0 0 0 0 0 .000 .000
20031군 기록 없음
2004
2005
2006 64 182 .275 50 12 3 6 22 1 11 .313 .473
2007 76 255 .247 63 8 2 10 35 2 14 .284 .412
20081군 기록 없음
2009
2010 14 18 .111 2 0 0 1 1 0 2 .200 .278
2011 5 2 .000 0 0 0 0 0 0 1 .333 .000
2012 15 16 .125 2 0 0 0 0 0 2 .222 .125
20131군 기록 없음
NPB 통산(6시즌) 175 474 .251 117 20 5 17 58 3 30 .292 .428

5. 기타

  • 2007년 시즌 중에 같은 현 출신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 은퇴 이후에는 모교인 슈난 고교에서 코치를 하고 있다.


[1] 출생 당시에는 카와나베군 보노츠초였다.[2] 라지만 실제로는 주전 자리를 얻지 못하고 백업을 전전했기 때문에 내/외야 유틸이었으며, 입단 당시에는 투수로 입단한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포수 빼고 다 한 셈.[3] 오마에노 히토후리데 다센니 히오츠케로 바쿠하츠다 사쿠라지마 우테 아오노 타케시(너의 한방으로 타선에 불을 붙여라 폭발이다 사쿠라지마 쳐라 아오노 타케시[4] 2루, 1루, 외야, 유격 등도 다 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5] 사실 이마에는 아오노의 1년 후배였으니 아오노가 신인 시절에 빠르게 성장하지 못한 것이 더 컸다.[6] 하지만 일본에서는 빠른 생일을 따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동생취급하고 형이라고 부르라고 그런 문화는 없다. 그냥 학교 기수 구별 정도의 의미. 애초에 빠른 생일을 따지는 문화는 거의 일본, 한국에만 있으며, 빠른 생일이 같은 해에 태어난 애들에게 윗사람 취급을 받으려고 하는 문화는 한국에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