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10:58:05

아이브록스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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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스 FC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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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 정보 <colbgcolor=#0c2577> 구단 <colbgcolor=#fff,#191919><colcolor=#000,#fff>레인저스 FC레인저스 WFC레인저스 FC 아카데미
선수단 스쿼드스쿼드(간략)임대 명단
역사 역사 역사기록유니폼역대 엠블럼역대 크레스트
최근 시즌 2020-212021-222022-232023-242024-25
관련 인물 창립자유명 선수역대 최고의 팀명예의 전당역대 감독올해의 선수역대 최다 출장자역대 최다 득점자
관련 상식 더비 매치 올드 펌
구단 시설 경기장 플레셔스 호1873~1875
번뱅크 파크1875~1876
키닝 파크1876~1887
아이브록스 파크1887~1899
아이브록스 스타디움1899~
훈련장 레인저스 트레이닝 센터
기타 연고지 글래스고
스폰서 32Red메인 스폰서 | 캐스토어킷 스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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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meetingsbooker.com/Ibrox-Stadium-1.jpg파일:external/rangers.co.uk/110316_ibrox_stadium_01.jpg
Ibrox Stadium
파일:Ibrox_Stadium_Main_Stand_Facade.jpg
레인저스 FC
아이브록스 스타디움
(Ibrox Stadium)
<colbgcolor=#0032a0><colcolor=#fff> 소재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개장 1899년 12월 30일
보수 1928년, 1978년~1981년, 1990년~1991년
수용인원 50,987석[1]
소유 레인저스 FC
운영 레인저스 FC
설계 아치볼드 리치[2][3]
홈팀 레인저스 FC (SPFL)
(1899년~현재)
필드규모 105 x 68미터[4]

1. 개요2. 역사3. 구조
3.1. 관람석

[clearfix]

1. 개요

글래스고에 위치한 레인저스 FC의 홈 경기장. 스코틀랜드에서 3번째로 큰 경기장이다. 1899년에 개장해서 여러 번의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UEFA 스타디움 카테고리 4 구장이기도 하다.

2. 역사

1872년 창단해 글래스고의 여러 경기장을 떠돌며 경기를 치르던 레인저스는 1876년 크리켓 경기장이었던 키닝 파크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10여년 간 키닝 파크에서 경기를 치르던 레인저스는 1877년 땅 개발 문제로 임대 살이를 끝내고 아이브록스 지역에 정착하며 아이브록스 파크를 건립한다. 하지만 수용인원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첫 번째 아이브록스에서의 생활은 길지 않았고, 팬들의 모금 등을 통해 두 번째 아이브록스를 건립하게 된다.
파일:Second_Ibrox_Park_Pavilion_1900.jpg
1899년 새롭게 지어진 아이브록스의 이름은 여전히 아이브록스 파크[5]였다. 아이브록스 파크는 현재의 아이브록스 스타디움과 모습이 완전히 다른데, 현 아이브록스에는 없는 트랙과 하나의 스탠드만이 존재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수용인원은 40,000명이었다.

셀틱 파크, 햄던 파크와 번갈아가며 스코티시 컵 결승전과 스코틀랜드 경기를 주최하였고, 입장 수익으로 새로운 스탠드를 건설하며 수용인원을 75,000명으로 늘렸다.

하지만 이 스탠드의 안전성은 나무로 되어 있어서 불안정하였고, 결국 첫 번째 1902 아이브록스 참사가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사고의 원인이 된 스탠드는 철거되었고, 수용인원은 25,000명으로 축소되었다.
파일:DvhtHfMX4AAc8ft.jpg_large (1).jpg
레인저스가 첫 번째 "도메스틱 더블"을 기록한 1928년, 아이브록스는 첫 번째 재개발에 들어가게 된다. 새로운 메인 스탠드의 건립이었다. 현재까지도 아이브록스의 상징으로 불리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메인 스탠드가 건설되었고, 수용인원은 10,000명이 증가하게 된다.

아이브록스는 계속 증축되어 1939년 셀틱과의 올드 펌 더비에서는 118,567명의 관중을 끌어모으게 된다. 이 시점에서 아이브록스는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경기장이었다.

1953년 조명 설치, 1960년대 지붕 설치 등 여러 발전을 거듭한 아이브록스였지만, 경기장 안전성만큼은 최악을 자랑하였다.

1967년, 1969년에는 2번의 화재, 1971년에는 현재까지도 영국 축구 최악의 참사이자 영향을 끼치는 두 번째 1971 아이브록스 참사 등 여러 사건사고가 발생하였고, 이는 곧 아이브록스를 안전한 경기장으로 재개발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파일:ibroxpast6.jpg
1974년 서독 월드컵 기간 동안 서독을 방문한 레인저스의 감독 윌리엄 와델은 서독의 경기장들을 보며 가파른 계단과 출구를 변경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이는 곧 재개발로 이어졌고, 이 계획의 모델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홈구장 베스트팔렌슈타디온이었다. 경기장 3면을 모두 좌식으로 변경하였으며, 옛 아이브록스의 모습을 간직한 장소는 메인 스탠드만 남게 된다. 수용인원은 44,000명으로 대폭 축소된다.

이후 재개발 비용 문제로 재정난을 겪게 된 레인저스는 새로운 회장 아래에서 스타플레이어 영입, 리그 9연속 우승 등 최고의 성적을 거두게 되며 많은 관중이 찾아오자 막대한 입장 수익을 얻게 되며 재정난을 해결한다.

2006년, 빌 스트루스 사망 50주기를 맞이해 메인 스탠드의 이름을 빌 스트루스 메인 스탠드로 변경하였고, 수용인원을 늘리게 된다.

2013년 전광판을 신형으로 변경하였고, 2014년 샌디 저딘을 기념하기 위해 고번 스탠드의 이름을 샌디 저딘 스탠드로 변경하게 된다.

3. 구조

3.1. 관람석

  • 샌디 저딘 스탠드 (북쪽 스탠드)
파일:Sandy_Jardine_Stand.jpg
레인저스 FC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인 샌디 저딘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이름. 구단 사무실과 VIP룸 등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 코프랜드 로드 (동쪽 스탠드)
파일:ibrox-stadium-glasgow-rangers-copland-road-end-1435068611.jpg
경기장 밖을 지나는 도로의 이름에서 명명되었으며, 이곳이 레인저스 FC의 서포터즈와 울트라스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가장 응원 소리가 큰 스탠드.
  • 브룸론 로드 (서쪽 스탠드)
파일:ibrox-stadium-glasgow-rangers-broomloan-road-stand-1435068610.jpg
경기장 밖을 지나는 도로의 이름에서 명명되었으며, 이전 이름은 패밀리 스탠드(Family Stand)였다. 샌디 저딘 스탠드와 브룸론 로드 사이에 원정석이 위치한다.
  • 빌 스트루스 메인 스탠드 (남쪽 스탠드)
파일:Bill_Struth_Main_Stand.jpg
레인저스 역사상 최고의 감독인 빌 스트루스 감독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이름.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의 상징인 붉은 벽돌로 지어진 메인 스탠드가 바로 이곳이다. 축구 관련 작가인 시몬 잉리스는 이 건축물을 두고 "유리와 강철로 된 현대적인 겉모습 아래 붉은 벽돌의 영광이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라는 평을 밝히며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메인 스탠드의 정문을 통해 가면 레인저스 명예의 전당 전시실과 트로피 전시실이 나온다.


[1] 최고 기록 관중수는 1939년 1월 셀틱 FC와의 맞대결에서 나온 118,567명. 당시에는 입석이 가능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관중 숫자.[2] 이외에 풀럼의 홈 구장인 크레이븐 코티지, 셀틱의 홈 구장인 셀틱 파크, 첼시의 홈 구장인 스탬퍼드 브리지,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홈 구장인 햄던 파크 등을 설계하였다.[3] 아치볼드 리치는 레인저스의 팬이었다고 한다.[4] 115 x 75 야드[5] 1997년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으로 명칭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