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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신기오로 아민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1. 개요

愛新覺羅阿敏
(1585 ~ 1640)

청나라의 황족이자 장수.

태조 천명제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조카이자 누르하치의 동생인 아이신기오로 슈르하치의 차남이었다. 태종 숭덕제 홍타이지와는 사촌 관계였다.

2. 생애

팔기군 중 하나인 양람기(孃藍旗)의 기주로 1608년에 추옝과 함께 해서여진의 우라부(오랍부)를 침공해 이한산성을 함락시켰고, 1613년 우라부를 정벌할 때 부잔타이가 30,000명으로 맞서자 누르하치가 싸우는 것을 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민이 백부인 누르하치를 설득해 우라부를 공격하도록 했다.

1616년에 아이신기오로 다이샨, 아이신기오로 망구르타이, 아이신기오로 홍타이지와 함께 호쇼이 버일러에 임명되어 4대 패륵(四大貝勒)이라 칭해지면서 국정을 다스렸고, 4패륵(四貝勒) 중에서 2패륵에 속했지만, 어디까지나 아들이 아닌 조카인데다가 아버지 슈르하치가 형인 누르하치에게 도전하다가 처형당해서 더욱 한의 직위를 계승하지 못할 운명이었다.

1619년에 명나라를 상대로 한 결전인 사르후 전투에 참전했으며, 백부 누르하치를 따라 해서여진의 예허부(엽혁부)를 공격했다. 1621년에는 심양 및 요양을 점령하고 진량책이 배반해 명나라의 장수인 모문룡에게 붙자 진강성의 백성을 내지로 옮겼으며, 모문룡이 조선의 경계에 주둔하자 밤에 진강을 건너 수장을 공격해 죽이고 모문룡을 달아나도록 만들었다.

1626년에는 몽골의 할하(칼카) 바린 부족과 자루트 부족을 정벌했고, 1627년에는 조선 침략의 책임을 맡아 출정하기도 했다.(정묘호란) 조선을 침공하면서 의주를 공격하고, 모문룡이 주둔한 철산도 공격해 달아나게 했으며, 정주, 안주, 평양 등을 함락시키고 중화에 머무르다가 인조가 사신을 보내자 죄 7가지를 쓴 서신을 보내 동맹을 거부했다.

다시 진군하여 황주에 머무르다가 인조가 사신을 보냈지만 다시 진군해 평산으로 진군했으며, 인조가 강화도로 달아나면서 강인을 보냈지만 수도인 한양을 공격하려고 했다. 조카인 아이신기오로 두두가 아버지 추연이 처형된 일이 있어서 두두를 꼬드겨 한양을 공격해 후금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했지만 두두와 여러 버일러들이 반발하고, 인조와 화친하게 되자 맹약을 깨고 3일간 조선을 약탈한 후 철수했다.

1630년 영평에 주둔해 진자진을 회유시키고 투항시키면서 노략질했고 난주, 천안, 준화 등 3성을 지켰으나, 홍이포를 끌고 온 명군의 공격에 밀려 성을 버리면서 준화성에 있는 명나라의 장수 및 관리 중 투항자와 백성들을 도륙시키도록 명령하고 영평으로 달아났다.

아민은 이전에 월권 행위를 멋대로 저질러 포로로 사로잡은 부인을 백부인 누르하치에게 바쳤다가 얼마 후 자신에게 달라고 하거나, 화친을 어긴 몽골의 차하르부(찰합이부)에 멋대로 물건을 보내고 누르하치의 말을 전했으며, 자녀의 혼사를 누르하치에게 물어보지 않고 사적으로 몽골의 버일러인 새특이에게 시집을 보내거나 변경에 주둔해 누르하치가 지정한 경계를 넘어서 멋대로 흑차목으로 가 주둔했다.

또한 누르하치가 땅을 지키도록 명령했지만 놀기만 하고 사냥을 나가거나, 아이신기오로 요토아이신기오로 호오거가 오면 절을 앉아서 받아 마치 군주 같았다고 한다.

결국 이렇게 오만한 태도를 보인 결과, 사촌인 홍타이지는 아민을 미워했고 부황인 누르하치의 사후 제2대 황제가 되었을 때, 명군에게 패배해 4개의 성을 버린 일로 아민에게 책임을 물었으나 결국 그의 전공들을 참작해 유배형에 처하는 선에서 끝냈다. 이후 아민이 소유하고 있었던 양람기는 동생인 아이신기오로 지르가랑에게로 넘어가버렸고, 결국 1640년 11월에 유배지에서 사망했다.

3. 대중매체

파일:칼부림_아민.jpg
네이버 웹툰칼부림》에서도 등장한다. 줄곧 호전적인 성품을 보이며, 명나라나 조선으로 진격해들어갈 것을 주장한다. 1627년의 정묘호란에서는 후금 원정군을 지휘한다. 태종 홍타이지의 정적으로 홍타이지가 가장 경계한다. 결국은 숙청되고 유배간 후 현재는 생사불명이다.

MBN 드라마 <보쌈-운명을 훔치다>에서는 평안도 가도에 주둔한 모문룡군을 처단하기 위해 조선 변경에 군사를 주둔시킨 것으로 묘사된다. 배우 윤택상이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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