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4-21 10:35:46

안범

안범(安範)

1460년(세조 6) 4월 24일~1523년(중종 18) 5월 14일.

조선 전기 문신. 자는 숙도(叔度)이고, 호는 만휴정(晩休亭)이다. 본관은 죽산(竹山[新])이고, 전라도 보성(寶城) 출신이다.

증조부는 영암군수(靈巖郡守) 안을겸(安乙謙)이며, 조부는 장흥고부직장(長興庫副直長) 안여주(安汝舟)이고, 아버지 안민(安民)은 무과에 올라 훈련원참군(訓練院參軍)으로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에 순국하였다. 어머니는 승훈랑(承訓郞) 선구령(宣龜齡)의 딸 보성선씨(寶城宣氏)로 슬하에서 외아들로 성장하였다. 부인은 상장군(上將軍) 전유정(全有貞) 딸 천안전씨(天安全氏) 이다.

1483년(성종 14) 계묘 식년시(式年試)에 생원으로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병으로 귀향하였다.

효렴(孝廉)으로 추천을 받아 전함사별제(典艦司別提)가 되었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이듬해 1507년(중종 2) 4월 20일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책록 되었고, 그 공으로 한 품계를 승진하여 사축서(司畜署)‧한성부(漢城府)‧예빈시(禮賓寺)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후 청안(淸安)‧진안(鎭安)‧예안(禮安) 세 고을의 현감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어 ‘안삼안(安三安)’이라는 별칭을 남겼으며, 백성들이 송덕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흉년으로 떠도는 유민(流民)들을 구호하는 등 자선사업에 힘썼다. 그 후 유민들이 자발적으로 보성 택촌에 있는 안범의 집 주위에 돌과 흙으로 담을 쌓아 ‘보은장(報恩墻)’이라 불렀고, 그 담으로 둘러 쌓여있는 마을을 ‘담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현재도 ‘담안(墻內) 마을’이라고 부른다.

장남 안수륜(安秀崙)은 1516년(중종 11) 문과에 급제하여 의정부사록(議政府司錄)을 지냈고, 차남 안수잠(安秀岑)은 1522년(중종 17) 문과에 급제하여 합천군수(陜川郡守)를 지냈으며, 3남 안수금(安秀嶔)은 1513년(중종 8) 무과에 급제하여 운산군수(雲山郡守)를 지냈다.

보성 죽산안씨 문중의 재실인 척산재(尺山齋)에서 매년 제향하고 있으며, 묘소는 전남 보성군 보성읍 쾌상리 척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