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23:17:14

안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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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colbgcolor=#131230><colcolor=#eee156> 안재형
安宰亨|Ahn Jae-hyung
파일:안재형탁구.jpg
출생 1965년 1월 8일 ([age(1965-01-08)]세)
전라남도 고흥군[1]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순흥 안씨 (順興 安氏)[2]
학력 득량서국민학교[3] (졸업)
부산남중학교 (졸업)
광성공업고등학교 (졸업)
부산산업대학교 (체육학 / 학사)[4]
한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5]
직업 탁구 선수 (셰이크핸드 / 은퇴)
탁구 감독
탁구 해설가
탁구 행정가
가족 아버지 안경, 어머니 송영희[6]
배우자 자오즈민, 아들 안병훈

1. 개요2. 선수 경력3. 수상 기록4.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탁구 선수 출신 감독, 행정가다. 2022년 1월 출범한 한국프로탁구리그의 초대 위원장을 맡고 있다.

2. 선수 경력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남자 탁구 단체전 결승에서 세계 최강 중국 대표팀을 맞아 9경기 5선승[7]제에서 1, 5, 9경기에서 모두 승리해서 대한민국의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특히 마지막 경기에서 1-1 세트 동률 상황에서 마지막 세트를 가져오는 극적인 장면의 주인공으로 유명세를 탔다.

3. 수상 기록

올림픽
동메달 1988 서울 남자 복식
세계 선수권
동메달 1987 뉴델리 혼합 복식
동메달 1987 뉴델리 남자 복식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6 서울 단체전
아시아 선수권
동메달 1988 니가타 남자 복식

4. 여담

  • 1989년 중국의 전직 탁구 선수인 자오즈민과 국제결혼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두 사람의 아들 안병훈은 현재 골프 선수로 활동 중이다. 결혼 당시 대한민국과 중국은 미수교국(1992년에 수교)인 데다가 중국과 북한과의 혈맹 관계가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어 두 사람의 결혼은 현실적으로 장벽이 굉장히 많았다. 그럼에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혼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아직 한중 양국간에는 아무런 외교 관계가 없던 터라 1989년 10월 스웨덴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해서 혼인신고를 했고 2개월 후에 국내에서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때의 참가 하객은 전·현직 장·차관 10여 명과 기자 100여 명을 포함해서 4천여 명이 넘었고 체육부 장관의 축사에다가 정권 실세라는 박철언 정무 제1장관이 노태우 대통령을 대신해서 참석했을 만큼 국가적인 행사였다. 연애와 결혼 후일담은 본인이 직접 출연해 언급한 영상이 있다.
  • 안재형이 동메달을 딴 19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대회 혼합 복식에서 자오즈민은 은메달을 땄다. 당시 대한민국 혼합복식 팀(양영자, 안재형)과 중국 혼합복식 팀(자오즈민, 장자량)이 4강전에서 만나서 중국 팀이 2-1로 이겼다. 며칠 뒤 기사를 보면 안재형이 자오즈민의 서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중국 대표팀 코치가 얘기하기도 했으며, 이 경기로 둘 사이는 끝이 났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 KBS와 TV조선의 탁구 해설위원으로도 나선 적이 있다.
  • 신촌 연세대 앞 명물길에 아이핑퐁탁구클럽이란 이름의 탁구장을 열었다. 간판에 안재형&자오즈민이라고 쓰여 있다.지도


[1] 아버지 안경은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이다. 이후 국민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전라남도 보성군으로 이주했다.[2] 찬성공파(贊成公派)-영의정공파(領議政公派) 32세손.[3] 이후 득량서초등학교로 개칭, 폐교[4]경성대학교. #[5] 석사 학위 논문: 탁구선수들의 PSIS 규준 개발에 관한 연구(2002. 2).[6] #[7] 당시 남자 단체전은 팀당 3명이 출전하여 한 선수가 모든 상대 팀 선수와 붙는 구조였다. 여자 단체전은 팀당 2-4명이 출전하여 단식 출전 선수 2명이 서로 상대 팀 단식 출전 선수와 붙고(총 4경기) 복식 출전 선수 2명이 서로 붙어서(1경기) 총 5경기였다. 복식 경기는 단식 출전 선수가 중복 출전해도 되고, 아예 다른 선수가 출전해도 되었으며, 단식 두 경기 후, 복식, 다시 단식 두 경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