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6 10:05:35

안정모

안정모
출생 1967년 12월 26일 ([age(1967-12-26)]세)
인천광역시[1]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학력 인천고등학교 (상과 / 졸업[2])
인천대학교 (중퇴[3])
병역 대한민국 육군 이병[4] 소집해제
데뷔 1987년 티삼스
가족 부인 정현이[5]
소속사 스쿨뮤직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1. 개요2. 활동
2.1. 데뷔 이전2.2. 티삼스 시절
3. 이후4. 경력5. 앨범6. 수상7.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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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기업인.

스쿨뮤직 대표. 인천 밴드 음악 1세대로 알려져 있고, 1980년대 인하공대 건축과의 음악동아리로 시작한 그룹 '티삼스'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했으며, 대표곡으로 <매일 매일 기다려>가 있다.

2. 활동

2.1. 데뷔 이전

인천고등학교 상과에서 음악만 하다가 막판 한 달 공부해서 인천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하자마자 음악을 하려고 때려치웠다고 한다.

1983~4년, 인천의 대학 서클을 모아서 공연을 하고 싶어 인천시민회관에 갔더니 집회허가서를 받아오라고 하면서 까였다고 한다. 결국 1985년 10월 18일, 나병환자돕기 공연으로 인천그룹사운드연협회를 결성했다.

2.2. 티삼스 시절

이후 티삼스에 키보디스트로 합류했지만 돈이 되지 않아 짜장면 배달도 하고, 나이트클럽 알바도 뛰고, 6개월 방위 복무 후 제대해서 이 또한 잘 되지 않아 1989년 말에 해체됐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전속계약으로 3년 동안 묶여있었다고 한다.#

당시 티삼스가 대학가요제에서 수상을 한 뒤, 아세아레코드[6]와 3년 전속계약을 맺었는데, 1집 내고 쫄딱 망하는 바람에 매니지먼트가 있던 시절도 아닌지라 소속사가 뭘 해줄수는 없었다고 한다.

어찌 됐든 인천그룹사운드연합회를 만든 초대 멤버로서, 인천 밴드 1세대로 기억되고 있다.[7]

티삼스의 공백기간 동안 KBS 뉴스 9 음악감독으로 일했던 왕준기 작곡가의 작업실에서 방송이나 녹음일도 했었다.

3. 이후

티삼스 해체 이후 1990년부터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1994년부터는 인천시민회관이 없어지던 1996년까지 학원을 운영하면서 고등학생 밴드들이 인천시민회관에서 공연하게 도와줬다고 한다.[8] 2002년부터 악기 판매업을 하는 스쿨뮤직의 대표, 2010년대부터는 인천그룹사운드연합회를 계승한 인천밴드협회의 협회장으로 재직중이다.

2017년부터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진출해, 당시 무명이던 가수 연아를 오디션을 통해 발탁하여, 전속계약을 맺고, 요요미로 재데뷔시켰고, 요요미의 첫 앨범 <첫번째 이야기 (First Story)>를 발매했다. 요요미의 노래 중 대부분의 곡을 작사, 작곡, 편곡했으며 앨범 사진 촬영도 가끔 하는 편이다. 부인인 작곡가 정현이도 요요미의 곡에 참여한다.

4. 경력

  • 그룹 '티삼스' 멤버, 키보디스트
  • 인천밴드협회 회장
  • 2010.08~ 인천시하키협회 회장
  • 2000~ 스쿨뮤직 대표이사

5. 앨범

6. 수상

  • 1987년 제8회 강변가요제 동상

7. 방송



[1] #[2] 1974년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으로 폐지된 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잠시 부활된 적 있었다.[3] 입학하자마자 자퇴했다고 한다.[4] 6개월 방위병으로 복무했다.[5] 작곡가.[6] 남인수가 설립했던 아세아레코드가 한동안 그로기 상태에 있다가 전후 복구되는 과정에서 연예기획사 사업을 하면서 극적으로 부활한 회사. 나훈아가 아세아레코드 소속이였다.[7] 1978년 데뷔한 사랑과 평화가 인천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애초 사랑과 평화 멤버들은 인천 출신도 아니거니와 기반이랄 게 없었기 때문에 1세대로 분류되지 않는다.[8] 이 때 헤비메탈 밴드 사하라도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