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의 성녀로 14 구난성인(救難聖人) 중 하나. 생몰년도 ? ~ 304년. 가장 유명한 동정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잔 다르크의 환시에서도 카타리나와 함께 등장하여 그녀를 격려했던 사람이다. 다른 별칭으로는 '용을 쓰러트린 마르가리타'가 있다. 가장 보편적인 이름은 '마르가리타'이나 영미권에서는 '마거릿'으로도 불리며 동방 정교회 로마 순교록에는 '마리나'라고 기술한 뒤에 그녀의 행적이 나온다.
축일은 가톨릭에서는 7월 20일, 정교회에서는 7월 17일이다. 농부, 교사, 임산부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교도 사제인 에데시오의 딸이었는데, 어머니는 일찍 죽었고 유모의 손에 자랐다. 그 유모가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기 때문에 그녀도 그 영향을 받아 곧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도교는 박해받던 상황으로 이교도 사제인 아버지로부터 집에서 쫓겨나 귀족 신분에도 불구하고 안티오키아 지방에서 양치기를 하면서 살아간다.
마르가리타의 외모는 몹시 아름다웠기 때문에, 새로 안티오키아 지사로 임명된 올리브리오는 자기 아내를 버리고 그녀를 아내로 삼고자 하였다.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하는 장관의 요구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단호히 거절했다. 또한 마르가리타에게 신앙을 버리라는 권유를 해오는 지사 앞에서도 그녀는 완강했고, 결국 격분한 올리브리오는 마르가리타를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죄목으로 독방에 감금했다.
그 때, 마르가리타의 신심을 노리던 악마는 홀로 갇혀 있는 그녀에게 용의 모습으로 나타나 해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의 두려움도 갖지 않고 성호를 그은 채 홀로 용에게 대적했고, 결국 하루가 다 지나도록 용은 그녀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못한 채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그래서 마르가리타의 상본에는 늘 그녀가 용의 머리를 밟고 십자가로 머리를 찌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가톨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고 안티오키아 정교회에서는 마르가리타가 용의 머리를 잡고 망치로 뚝배기를 깨부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악마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성녀는 그의 머리채를 잡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그 위에 올라타 무엇 때문에 내게 왔느냐며 윽박질렀다고 한다. 그래서 정교회에서 마르가리타를 묘사한 성화에서는 마르가리타가 망치를 들고 악마를 붙잡고는 망치로 내리치거나 위협하는 화끈한 모습이 많이 나온다.
여하튼 용을 퇴치하였지만, 감방에서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며칠에 걸쳐 혹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그녀의 신앙심을 꺾지 않았고 하느님의 가호로 그녀의 몸에도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마지막에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성녀가 처형되기 직전 마지막 기도를 드리자 하늘에서는 "너의 기도를 들었노라"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이에 수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그 뒤로 그녀는 가장 유명한 성녀로서 칭송받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세례명으로서 쓰이고 있다.
처형 당시 목을 치는 횟수가 10번이나 걸리는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는 같은 이름을 가진 16세기 영국의 마거릿 폴과 혼동한데서 온 이야기로 보인다. 마거릿 폴은 당시 영국 왕인 헨리 8세의 딸인 메리 1세의 가정교사로, 헨리 8세가 국교회를 설립하는 와중에 이를 극렬 반대하다 처형당한다. 처형 당시 집행인이 매우 서투른 자여서 도끼를 10여 차례나 휘두르고서야 처형이 끝났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세월이 흘러 19세기 후반 무렵 복자로 시복된다. 이 마거릿 폴을 가톨릭에선 마르가리타 폴이라 지칭하는데 같은 이름이다 보니 혼란이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여러모로 동시대에 활약한 에퀴테스인 게오르기우스의 여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