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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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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생 기자:
안혜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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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4b16><colcolor=#000,#ddd>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安惠利
Ahn Hai-ri
파일:중앙일보안혜리.jpg
출생 1972년 5월 25일 ([age(1972-05-25)]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아버지 안병훈
어머니 박정자
본관 광주 안씨 (廣州 安氏)
학력 구정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 / 학사)[1]
직업 기자
소속 중앙일보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연혁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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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자. 現 중앙일보 논설위원.

2. 생애

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재학 중인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문화부, 경제부, 산업부 등 다양한 부서를 거쳤다. 중앙일보가 새롭게 시도해온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끌며 중앙일보 혁신에 기여했다. 2001년 말 진부한 생활 관련 섹션이었던 '베터 라이프' 섹션의 업그레이드를 맡아, 당시 일간지에선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모델 섭외 촬영,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 비슷한 외부 화가에게 내용에 맞는 그림 의뢰 등 다양한 비주얼 혁신을 이뤘다. 이런 방식은 중앙일보의 다른 지면 비주얼은 물론 다른 일간지 제작 방식에도 큰 영향을 줬다.

한쪽에 치우지지 않은 객관적 콘텐츠 제작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가령 보수와 진보 양측의 다른 사설을 비교하는 '사설 속으로' 등 파격적 콘텐츠를 주도했다.[2] 또한 중앙 일간지 속 지역 신문이라는 국내 첫 시도였던 '강남통신'은 소위 '버블7'이라 불린 부동산값 비싼 지역 위주로만 배달하고 네이버 등 포털에 무료로 풀지 않고 공개 일주일 뒤 로그인 사용자만 볼 수 있게 하는 등 중앙일보에선 처음으로 온라인 유료화 시도를 했다.[3] 매번 큰 주목을 받은 커버스토리를 비롯해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교육 정보와 고품격 인터뷰, 유명 정신과 전문의 윤대현의 칼럼 등 모든 콘텐츠가 화제였다. 당시 중앙일보에는 왜 '강남통신'이 본인의 주거지에 배달이 안 되는지 항의전화가 빗발칠 정도였다.

이밖에 중앙일보의 다양한 사진 데이터베이스를 디지털화하는 동시에 이를 카드뉴스 형식의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시킨 모바일 앱 서비스 'Our History'를 런칭했다.[4] 당시 중앙일보 대부분 사진은 창고에 있었는데, 이를 찾아내 디지털화하고 정보를 입력해 추후 사진 검색을 용이하게 했다. 동시에 중앙일보 콘텐츠를 측정하는 데이터 구축 업무를 맡아 중앙일보 디지털 퍼스트에 기여했다. 이와 아울러 지면에서 구현하지 못하는 독특한 형식의 디지털 오피니언 섹션인 '나는 저격한다'[5] '나는 고발한다'[6] 기획을 런칭해 화제를 모았다. 논설위원이 되기 전부터 칼럼을 써왔고, 논설위원이 된 후에는 권력을 매섭게 비판하는 칼럼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과도한 코로나 방역 조치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위선, 윤미향 의원의 위안부 할머니 돈 유용 의혹 등을 객관적 팩트를 기반으로 비판했는데, 이런 이유로 이를 아프게 여긴 좌파 진영의 집요한 공격을 받았다. 특히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 의혹과 관련, 관련된 복지부와 국립중앙의료원이 언론중재위를 통해 제기된 문제를 부인했으나 칼럼을 반박할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 정정보도가 아닌 그들의 입장을 칼럼에 덧붙이는 '알려왔습니다'를 추후에 포함시켰다. 이를 조국 전 장관이 마치 칼럼에 오류가 있었다는 식으로 페이스북 등을 통해 거짓 선동을 했다. 이렇게 조국 전 장관이 좌표를 찍으면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온라인 상에서 안혜리 논설위원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이런 식의 집단적 괴롭힘에 대해 중앙일보는 조국 전 장관 측에 '이 포스팅을 내리지 않으면 바로 법적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냈고, 이를 받은 조국 전 장관은 바로 꼬리를 내려 포스팅을 삭제했다.

이런 집요한 공격에는 그의 칼럼이 아픈 것과 별개로 그의 부친이 조선일보를 1등 신문으로 만든 유력 언론인 안병훈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했다고 해서 그가 특정 진영의 논리에 섰다고 볼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 들어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의혹이나 의료를 망치는 의료개혁 등에 대해서도 매섭게 비판했다. 이처럼 안혜리 논설위원은 특정 진영을 가리지 않고 권력에 대한 견제라는 일관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의료개혁과 관련해서는, 일방적인 여론의 지지 와중에도 윤 정부가 내세운 의료개혁의 본질이 무엇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주요 언론 가운데 사실상 가장 먼저 문제제기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견해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7]

3. 연혁

  • 1993년 11월 중앙일보 입사
  • 2014년 12월 중앙SUNDAY 기획 에디터
  • 2015년 12월 중앙일보 뉴디지털실장
  • 2016년 7월 중앙일보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 2018년 1월 중앙일보 논설위원

4. 여담

  • 조부, 부친, 모친 모두 조선일보에 재직했다. 부친 안병훈은 조선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1] 90학번[2] # #[3] #[4] #[5] # #[6] # #[7] #[8] 보건복지부의 해명 및 취재의 정당성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