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1 07:14:45

우야라수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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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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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르타르수아크
정착촌 캉에흘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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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르타르수아크 지구의 정착촌
우야라수수크
Ujarasussuk | Alanngoq
<colbgcolor=#d00c33><colcolor=#FFFFFF> 경위도 69°51'26.6"N 52°25'39.3"W
국가
[[그린란드|]][[틀:국기|]][[틀:국기|]]그린란드
파일:케케르탈리크 문장1.jpg 케케르탈리크
지구(地區) 케케르타르수아크
시간대 UTC-02:00
우편번호 3953
인구 0명[A]
1. 개요2. 역사
2.1. 정착촌 설립 이전2.2. 정착촌의 설립2.3. 의외로 험악한 환경2.4. 정착촌의 폐쇄2.5. 행정구역
3. 인물

[clearfix]

1. 개요

우야라수수크(혹은 알랑오크Alanngoq)는 디스코섬에 소재하였던 정착촌이다. 1862년 설립되어 1962년부로 폐쇄되었다.

2. 역사

2.1. 정착촌 설립 이전

식민지 시대 이전에도 이 위치에 정착촌이 있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1793년 기준으로 이곳에 23여명이 살았으며, 이내 버려져 1799년 이후로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이후 1821년에 이르러서 다시 사람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830년에는 이곳이 일종의 임시 정착촌[2]으로 지정되었으나, 오래잖아 다시 버려졌다. 이후 1850년대에 이르러서는 디스코섬 북부 해안 전체가 무인 지역이 되었다.

2.2. 정착촌의 설립

1862년 고드하운(현 케케르타르수아크)에 살던 덴마크인 통장이[3] 프리츠 이외르겐센(Fritz Jørgensen)이 정착촌 설립을 위해 소수의 그린란드인과 함께 보내졌다. 본래 이 정착촌은 이후의 쿠흘리사트가 될 지역 일대에 설립될 예정이었으나, 가던 도중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적당한 장소로 피신한 곳이 여기였고, 또 이곳이 마을을 짓기에 굉장히 좋은 땅처럼 보였기에 가다 말고 그냥 눌러앉아 버렸다.

이 새로 지어진 마을 인근에 있던 정착촌인 아타니케흘루크(Atanikerluk) 사람들 대다수가 이곳으로 이주했다.

2.3. 의외로 험악한 환경

마을을 세울 당시에는 여기가 마을을 짓기에 굉장히 좋은 땅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사람이 살기에 아주 나쁜 땅이었던 것으로 이내 밝혀졌다. 당시 마을을 개척한 사람들은 몰랐겠으나, 식민 시대 이전의 정착촌은 발견되지도 않고, 그 이후로도 가끔 사람이 살다가 이내 버려진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배가 드나들 만한 곳이 아예 없어서 물고기를 잡기도 어렵고, 날씨는 험악하다 못해 당시 남그린란드 내의 모든 식민지구 중 최악을 달렸다. 겨울에 사람이 얼어죽는 일은 예사에, 어렵사리 배를 띄워도 바다 또한 험악하긴 마찬가지라 배가 뒤집혀 사람이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1867년에 독감이 유행하여 8명이 사망했다.
1914년 5월, 이 지역의 선교사를 포함한 남자 세 명이 카약이 뒤집혀 익사했다.

2.4. 정착촌의 폐쇄

이후 정착촌이 폐쇄되기까지 최저 50명에서 최고 90명 수준의 인구를 오락가락하다가 1962년부로 폐쇄, 이듬해 9월부로 모든 인구가 퇴거했다.

정착촌의 폐쇄는 그린란드 기준으로 꽤 빠르게 이루어진 편으로 보이는데, 1960년 기준으로 78명이 거주하였으나 이후 정착촌 자체가 사라지기까지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5. 행정구역

1942년까지는 리텐벵크(Ritenbenk) 식민지구에 속한 별도의 행정구역(우야라수수크 자치구)을 구성했으며, 우나르토크(Uunartoq)가 이 자치구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해에 리텐벵크 식민지구가 폐지되었고, 이에 따라 우야라수수크는 야콥스하운(Jakobshavn) 식민지구로 편입되었다.

1950년 그린란드 식민지가 통합됨에 따라 행정구역의 변화가 있었고, 이때 바이가트(Vaigat) 자치구가 신설됨에 따라 야콥스하운 식민지구[4]에서 떨어져 나와 이곳으로 다시 편입되었다.

3. 인물

이 정착촌 출신의 유명인사.
  • 율리우스 페테르센(Julius Petersen): 1880-?, 그린란드 국무위원
  • 프레벤 랑어(Preben Lange): 1948-2013, 정치인(전진당) 겸 교사. 1987년까지 그린란드 이나치사르투트 및 덴마크 폴케팅에서 정치 활동을 하다가 카시기앙우이트에서 교사로 전직하였다.

[A] 1964년 기준[2] 당시에는 연중 일정 시기에만 사람이 거주하는 임시 정착촌의 개념이 있었다.[3] 통(桶)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이른다.[4] 이 해부터 케케르타르수아크 자치구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