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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 | |
<colbgcolor=#003082> 출생 | 1937년 1월 25일 |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우방기샤리 파우아 | |
사망 | 2011년 4월 5일 (향년 74세) |
카메룬 두알라 | |
재임기간 | 제5대 대통령 |
1993년 10월 22일 ~ 2003년 3월 15일 | |
소속 정당 | 중앙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 |
직업 |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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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제5대 대통령.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집권했다가 프랑수아 보지제의 쿠데타로 인해 축출되었다. 역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들 중에서 독재자가 아닌 유일한 인물이다. 물론(...) 독재자가 아닐 뿐이지 정치는 전형적인 아프리카국가들의 부패한 지도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어서 대통령 재임기간동안 나라는 더욱 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2. 생애
1937년 파우아에서 태어났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독립 이후에는 다비드 다코 정부에서 농업 부문 관료를 역임했다.장 베델 보카사의 쿠데타 이후에는 보카사의 신임을 얻어 여러 요직을 거쳤다. 중앙아프리카 제국에서는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총리를 지냈다가 중앙아프리카 인민해방전선(FLPC)을 창당하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다비드 다코가 다시 정권을 잡은 뒤인 1981년에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앙드레 콜링바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파타세는 프랑수아 보지제를 비롯한 장교들의 도움을 받아 콜링바에 대항하였으나 실패하고 토고로 망명했다. 이후 1992년에 귀국하고 1993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선거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치러진 선거였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북부 지역 인사들을 요직에 앉혔고 남부 지역 인사들[1]과의 갈등이 촉발되었다. 게다가 재임 중인 1996년~1997년에는 군인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9년에는 재선에 성공했으나 내부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2001년에는 콩고민주공화국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반군이 국경 일대에서 마찰을 일으켰고 같은 해에 다시 쿠데타가 발생하여 이때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보지제가 쿠데타 미수 혐의로 파타세에 의해 해임되었다.
결국 2003년, 파타세가 니제르를 방문한 사이에 보지제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파타세는 토고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카메룬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