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낙견(洛見) |
본관 | 함종 어씨[1] |
출생 | 1889년 11월 5일 |
경상도 고성현 동마면 두락정리 (현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삼락리 간사지마을)[2] | |
사망 | 1967년 10월 22일[3] |
상훈 |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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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89년 11월 5일 경상도 고성현 동마면 두락정리(현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삼락리 간사지마을)에서 아버지 어윤홍(魚允泓, 1863. 8. 10 ~ 1923. 2. 10)과 어머니 함안 이씨(1870 ~ 1895. 3. 11) 사이의 6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곤기리로 이주하여 본적을 옮겼다.그는 평소 투철한 항일의식을 갖고 있어 독립운동에 가담하기 위해 일찍이 만주로 망명했었는데, 1920년 음력 8월 중화민국 봉천성 동변도(東邊道) 안동현(安東縣)[4]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특파원을 만나 그의 권유를 받고 독립운동 자금 500원을 제공했다.
그 뒤 평안남도 영원군 대흥면 인처리(현 대흥군 인룡리)로 이주하였으며, 1921년 평안남도 영원군에서 항일비밀결사 대한계흥단(大韓繼興團)에 단원으로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및 동지 포섭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다가 얼마 뒤 조직이 발각되어 곧 체포되었다.
그리고 1922년 4월 5일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형을 선고받았으며, 이에 공소하였으나 1922년 5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위 혐의에 대해 공소가 기각되어 결국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67년 10월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어상선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