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19:05:39

에베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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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기의 정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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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bertistes
한글명칭 에베르파
영수 자크 르네 에베르
창당일 1791년
해산일 1794년
이념 급진주의
라이시테
국가 무신론
대중주의
반교권주의
자코뱅주의
혁명적 테러리즘[1]
정치적 스펙트럼 좌익 ~ 극좌
기층조직 클뢰브 데 코르들리에
1. 개요2. 성향3.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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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혁명기의 클뢰브 데 코르들리에 소속 극좌정파이다. '에베르주의자'라고도 번역한다. 이름을 보아하듯 자크 르네 에베르가 해당 정파의 리더였다.

2. 성향

급진주의, 대중주의[2], 반(反)교권주의를 내세웠고 학자에 따라 반가톨릭 정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급진주의자들도 이신론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당은 무신론을 지지했다. 에베르주의자들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를 온건주의라고 맹비난했다.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온건하게 보일정도로 매우 극단적인 정파였다. 실제로 이들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너무나 온건하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극좌적인 정파도 있었다.

3. 의의

에베르파의 사상은 근대적 세속주의 확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국가 무신론에도 영향을 주었다.

[1] 에베르파는 민중의 자유급진적으로 쟁취하기 위해 귀족, 성직자 세력에 대한 폭력과 학살을 옹호했다. 이들이 존재하는 한 언제든지 반동을 일으켜서 민중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모조리 박멸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개념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에 적색 테러라는 명칭이 없었으며, 극좌 공화주의, 극좌 급진자유주의자들이 저지르는 테러는 '혁명적 테러'라고 지칭되었다.[2] 당시에는 좌익대중주의, 우익대중주의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당대의 보수 우파 내지 극우파들은 어차피 전제군주제를 옹호하였으므로 평민에게 어필하는 대중주의와 상극이였다. 즉, 당시에는 대중주의자가 곧 극좌파였다. 대중주의는 기본적으로 좌우익 할 거 없이 평민(common people)을 대변하는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