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자 | ||||
2018년 | 2019년 | 2020년 | ||
윌리엄 D. 노드하우스 폴 M. 로머 | → | 에스테르 뒤플로 아비지트 배너지 마이클 크레이머 | → | 폴 R. 밀그럼 로버트 B. 윌슨 |
<colbgcolor=#000><colcolor=#fff> 에스테르 뒤플로 Esther Duflo | |
본명 | 에스테르 뒤플로 배너지[1] Esther Duflo Banerjee |
출생 | 1972년 10월 25일 ([age(1972-10-25)]세) |
프랑스 파리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2] |
학력 | 리세 앙리 4세 (졸업) 파리 고등사범학교 (사학, 경제학 / 석사) (1994년) 파리 경제학교[3] (경제학 / DEA) (1995년) MIT 대학원 (경제학 / Ph.D.) (1999년)[4] |
소속 |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경제학과 / 정교수) |
지도교수 | 아비지트 배너지 조슈아 앵그리스트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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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스테르 뒤플로는 프랑스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이다. '세계 빈곤 경감을 위한 실험적 접근'이라는 공로로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5]2. 생애
2.1. 어린 시절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수학과 교수인 아버지 미셸 뒤플로와 소아과 의사인 어머니 볼랭 뒤플로 사이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전쟁의 희생자인 아이들을 돕기 위해 전 세계를 돌며 자원봉사를 하였다. 이런 환경에서 뒤플로는 남을 돕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게 되었다.1990년 파리 고등사범학교 사학과로 진학했고 복수전공으로 경제학을 수학했다. 1992년 6월, 당시 경제학과장인 다니엘 코헨(Daniel Cohen) 교수의 학부 지도학생으로 들어갔다. 당시 코헨 교수는 뒤플로를 팔방미인(jack-of-all-trades)으로 칭찬하며 경제학이야 말로 딱 맞는 학문이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이내 뒤플로는 자신의 전공에 대한 회의에 빠졌는데, 역사학은 너무나 먼 이야기로 느껴져서 쓸모 없다고 생각했고, 경제학은 끔찍할 정도로 지루한 학문이라고 여겼다. 이런 와중인 1993년, 10개월 간 모스크바의 Social Science university의 프랑스어 TA로 파견을 다녀오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 했다. 파견을 갈 당시에는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아했으나, 코헨 교수는 당시 보리스 옐친의 경제자문을 맡고 있던 제프리 삭스의 연구팀에 뒤플로를 추천했다. 또한 MIT 교수로 있던 토마 피케티를 만나게 되었는데, 피케티 교수는 MIT 경제학과로 진학하면 세상에 유용한 경제학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1995년, 뒤플로는 MIT 경제학 박사 과정에 입학하게 된다.
2.2. 경제학에 눈을 뜨다
"우리의 목표는 가난과의 싸움이 과학적 증거에 기초하도록 하는 것이다."
MIT에서 처음으로 수강한 과목인 '개발경제학'의 담당 교원이 이후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아비지트 배너지와 마이클 크레머였다. 배너지 교수 가난은 사람들의 기회를 제한하고 가난이 가난을 낳는다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개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구축하는 연구에 매진했고, 해당 수업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했다. 단순히 학문 탐구를 위해서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재능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자'라는 큰 목표 아래서 진행되는 연구는 남을 돕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뒤플로에게도 자극이 되었다. 이후 배너지의 지도학생이 되어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뒤플로는 박사 논문 주제로 1970년대 인도네시아의 학교 설립 프로그램과 관련된 자연실험의 효과에 초점을 맞췄고, 개발도상국에서 더 많은 교육이 더 높은 임금을 초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1999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바로 MIT의 조교수로 임용되었다. 2002년 부교수 승진 및 종신교수가 되었고, 당시 만 29세로 최연소 테뉴어 기록이었다.
2003년 6월, 아비지트 배너지와 Sendhil Mullainathan[6] 교수와 함께 MIT 빈곤 행동 연구소[7]를 설립하여 200개 이상의 경험적 개발 실험을 수행했다. 현재 이 연구소는 Abdul Latif Jameel Poority Action Lab(J-PAL)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200여명의 소속 교수들과 전 세계에서 초청된 많은 교수들로 구성된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저개발국의 빈곤퇴치를 위해 실험적 연구방법인 '무작위 배정 연구'를 통해 빈곤탈출을 위한 정책실험의 효과성을 검증하는데 기여함으로써 2019년 노벨경제학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3. 여담
- 2010년 '존 클라크 메달'[8]을 수상을 수상했다.
- 2015년, 자신의 박사 지도교수이자 2019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아비지트 배너지와 결혼했고 슬하에 2명의 자녀를 두었다.
- Academic Influence에서 선정한, 1990년부터 2022년 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순위에서 20를 기록했다.
- 이재명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1년 경기도지사 시절에 뒤플로의 저서 내용을 왜곡 인용하여 학계 등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재명/비판 및 논란/정책 및 공약 참조.
- 2022년 E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위대한 수업 시즌 1 107강 ~ 111강에서 힘든 시대의 경제학라는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
- 그녀의 동생인 애니 뒤플로도 언니와 비슷하게 Innovations for Poverty Action (IPA) 이라는 개발경제학 연구단체를 설립했다. J-PAL이 MIT에 있는 것에 비해 IPA의 본사는 예일 대학교가 있는 New Haven에 있었다가 워싱턴 D.C.로 옮겼다. 설립자들이 실제로 자매고 두 기관이 하는 일도 비슷해서 신입 연구원 워크샵도 같이 할 정도로 긴밀한 사이다.
- 2023년 방한한 자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심소득' 사업에 대해 "여러 보고서를 읽어봤는데 잘 설계된 것 같다", "굉장히 투명한 규정으로 설정이 되어 있고 또 매우 이해하기 좋은 시스템"이라고 호평했다. 그러면서 "한국처럼 부유한 국가는 통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사람들의 수입 등을 정부가 파악하고 있다. 이런 국가에서는 선별적 지원이 훨씬 더 의미가 있다"면서 "보편적 기본소득은 하면 정말 많은 사람한테 제공을 해야 하고, 조금씩 줄 수밖에 없다. 이 돈은 사람들의 인생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라고 선별적 지원을 지지했다. #
[1] 2015년 아비지트 배너지와 결혼했다.[2] 2012년 취득[3] 산하 고등사회과학연구학교 졸업(EHESS, École des Hautes Études en Sciences Sociales)[4] 박사학위 논문: Three Essays in Empirical Development Economics[5] 2009년 엘리너 오스트롬 이후 첫 여성 수상자이자, 당시 만 46세로 최연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다.[6] 1973년생의 인도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7] 인도 첸나이와 파리 경제학교에 지사를 두었다.[8] 미국 경제학회에 의해 경제학 사상과 지식에 명백한 기여를 했다고 간주되는 40세 미만의 미국 경제학자에게 수여되는 메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