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09 20:19:01

에우렐류 고메스

에우렐류 고미스에서 넘어옴
Philips Sport Vereniging Eindhoven
파일:고메스1.png
<colbgcolor=#f00000><colcolor=#ffffff> 이름 에우렐류 고메스
Heurelho Gomes
본명 에우렐류 다시우바 고메스[1]
Heurelho da Silva Gomes
출생 1981년 2월 15일 ([age(1981-02-15)]세)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 주 주앙피녜이루
국적
[[브라질|]][[틀:국기|]][[틀:국기|]]
신체 191cm / 체중 83kg
직업 축구 선수 (골키퍼 / 은퇴)
소속 <colbgcolor=#f00000><colcolor=#ffffff> 유스 데모크라차 SL (1999~2001)
크루제이루 EC (2001)
프로 크루제이루 EC (2002~2004)
PSV 에인트호번 (2004~2008)
토트넘 홋스퍼 FC (2008~2014)
TSG 1899 호펜하임 (2013 / 임대)
왓포드 FC (2014~2020)
기타 PSV 에인트호번 (2022~ / 엠버서더)
국가대표 12경기 (브라질 / 2003~2011)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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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플레이스타일3. 클럽 경력4. 국가대표 경력5. 우승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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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20년 가깝게 선수생활을 하며 PSV 에인트호번왓포드 FC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그 뛰기 힘들다던 셀레상의 일원으로 12경기나 뛰었던 실력있는 골키퍼였다. 하지만 국내에선 토트넘 시절 보여준 예능으로 인해 고메디언이라는 다소 저평가가 섞인 별명이 붙어있다.

2. 플레이스타일

뛰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우수한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어 슈퍼세이브 능력이 돋보였으며, 상당수 브라질리언 골키퍼들이 그렇듯 좋은 발기술과 빌드업 능력을 지녔다. 또한 강한 어깨에 기반한 긴 던지기를 이용한 볼 전개가 특징적이었던 선수. 하지만 핸들링이 불안하고 라인 조율이 미숙하며, 플레이에 기복이 심해 심심찮게 대형 실책이 한 차례씩 나오는 등 안정감에서 약점이 있기에 사람들이 '고메디언'이라는 안 좋은 별명을 붙였다.

3. 클럽 경력

3.1. 프로 데뷔 ~ PSV 에인트호번

크루제이루 EC에서 프로 데뷔 한 뒤, 2시즌 반동안 59경기에 출전, 입지를 늘려갔고, 이후 PSV 에인트호번이 고메스의 재능을 보고 영입했다.

이적 직후에는 '브라질 선수가 필드에 있어야지 왜 골문 앞에 서있냐' 라는 비아냥[2]도 들었지만, 고메스는 실력으로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고 얼마 안가 PSV의 든든한 수문장으로 자리매김한다. 첫시즌인 04-05 시즌부터 맹활약한 고메스는 거스 히딩크의 지휘 아래 PSV의 14년만의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3]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리그에서는 엄청난 반사신경과 특유의 롱스로우를 앞세워 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군림했다. 이러한 활약 속에 PSV는 아약스와 페예노르트를 모두 따돌리고 4년 연속 리그 우승이라는 대업을 세운다.

3.2. 토트넘 홋스퍼 FC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1194980-0291DC3A000005DC-824_468x453.jpg

이러한 활약을 유수의 클럽들이 눈여겨보았고, 경국 2007-08시즌 종료 후 78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 EPL 무대에 도전하게 되었다. PSV시절 동료였던 이영표와 다시 한 번 한솥밥을 먹을 뻔 했으나, 이영표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며 엇갈리게 되었다.

고메스는 첼시 FC전에서 준수한 경기력으로 팀에 무승부에 일조하며 무난한 스타트를 끊나 싶었으나, 아스톤 빌라 FC전에서 애슐리 영의 슛을 펀칭미스로 먹힌 이후로 페이스가 떨어졌고, 팀도 강등권까지 밀리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그러다가 풀럼전 알까기 실점 이후 11월에 골키퍼 코치가 전직 토트넘 골키퍼였던 토니 파크스로 바뀐 뒤, 폼이 급격하게 올라오면서 후반기에는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는 한때 팀 동료였던 박지성의 결정적인 슛을 슈퍼세이브로 막아내기도 했다. 후반기에는 홈경기에서 클린시트를 계속 적립하며 안정감을 보였다.

그리고 2009-10 시즌, 시즌 초 사타구니 부상으로 한달 부상을 끊고 온 고메스는 미칠듯한 페이스로 슈퍼세이브를 연속해서 작렬시켰고, 팀 역시 순위가 쭉쭉 올라가며 챔스권을 노려보게 되었다. 특히 후반기 첼시 FC전이나 맨체스터 시티 FC전에선 그야말로 신들린듯한 선방을 연속해서 작렬하며 팀을 캐리했다. 그렇게 토트넘은 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했고, 고메스는 토트넘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010-11시즌 토트넘은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았고, 챔스 4강 경험자인 고메스에 대한 기대는 컸다. 그러나 고메스는 인터 밀란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전반 10분도 채 되기전에 퇴장당하며, 결국 팀은 가레스 베일마이콩을 압도했음에도 3-4로 패했다. 리그에서의 경기력도 여러차례의 실수로 신뢰도를 잃어가며 작년에 비해 떨어진게 눈에 보이던 와중, 4월에 열린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챔스 경기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중거리슛을 펀칭미스로 실점하는 등 실수를 하면서 두경기에서 5실점을 기록, 팬들의 비판에 시달리더니, 4월 30일, 첼시 FC와의 리그 경기에서 프랭크 램파드의 슛을 알까면서 실점, 결국 고메스에 대한 여론은 대폭발했다.

결국 토트넘은 시즌 종료 후 40살의 노장 브래드 프리델을 영입해 고메스와 경쟁시키기 시작하더니, 그리고 시즌 개막전부터 고메스는 프리델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컵대회 키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더니 보드진이 올랭피크 리옹의 주전 골리 위고 요리스까지 영입했고, 써드키퍼는 과거 첼시 FC에서 뛴 바 있던 카를로 쿠디치니가 담당하면서 고메스의 역할은 4번째 골키퍼가 될 정도로 추락했다.

결국 고메스는 2013년 1월 마지막날 분데스리가의 TSG 1899 호펜하임으로 반시즌 임대를 떠났다. 호펜하임에선 그럭저럭 괜찮은 경기력늘 보여줬으나, 4월 6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경기 도중 손허리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시즌아웃되었다. 이후 2013년 여름에 토트넘으로 돌아왔으나 요리스가 잘 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고메스의 자리는 없었다.

3.3. 왓포드 FC

파일:h.gomes.jpg
결국 2013-14 시즌 종료 후 계약만료로 방출되는게 확정되었고, 5월 22일 보스만 룰에 따라 잉글리시 챔피언십의 왓포드 FC로 이적하는게 확정되었다. 계약기간은 1년. 재밌는 점은 또다시 한국 선수와 엇갈렸다는 점. 저번에는 이영표와 엇갈렸는데 이번엔 박주영과 엇갈렸다.

그리고 2014-15 시즌 고메스의 경기력은 가히 챔피언십 최고 수준이였다. 지난 시즌만 해도 2부리그 중위권 수준이던 왓포드가 우승경쟁을 하는데는 고메스의 공헌이 상당히 크다. 그리고 왓포드는 AFC 본머스에 이어 챔피언십 2위를 기록, 1부리그 승격에 성공했으며, 고메스는 2년만에 EPL로 돌아오게 되었다.

프리미어 리그로 돌아온 2015-16 시즌에도 고메스의 활약은 여전해서 팀의 수비진을 이끌었고, 왓포드의 초중반 돌풍의 주역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왓포드는 후반기에 퍼져버리며 13위로 시즌을 끝마쳤지만, 이 시즌 고미스의 활약상은 오디온 이갈로와 함께 팀 내 최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나마 그 이갈로도 후반기에 퍼진 반면, 고미스는 후반기에도 날아다니면서 팀이 더 추락하는걸 온몸으로 막아냈다. 잔류 안정권인 승점 40점 도달이 걸린 34라운드 WBA와의 원정경기에서 베라히노의 두 차례 페널티킥을 모두 막아내며 1:0 승리를 지켜내기도 했다. 그 결과 이 시즌 고메스는 15-16 시즌 유럽 리그를 통틀어 최다세이브 기록을 세웠다. 물론 수비진이 비교적 약한 중하위권 팀 골키퍼들이 세이브 기회가 많은 만큼 그 수도 비교적 많은 편이나, 고메스는 선방률까지 높아서 그 활약에 토를 달 팬은 없었다.

2016-17 시즌,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본인이 PK를 내주고 본인이 선방하는 예능쇼를 선보였다.

스토크 시티와의 경기에서 복귀했는데 자책골을 기록하는 굴욕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17-18시즌 현재까지 왓포드 안에서 고메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2016-17 시즌에는 잠시나마 맨시티 주전이기도 했던 코스텔 판틸리몬, 17-18시즌에는 그리스 국가대표팀 주전이었던 오레스티스 카르네지스가 경쟁자로 왔으나, 고미스는 꿋꿋하게 주전을 유지하는 중이며 팬덤에서도 고미스의 주전 기용에 대해 반발하는 의견은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나이는 나이인지 후반기가 되자 결국 카르네지스에게 주전자리를 뺏겼다. 은퇴 및 코치 전향설도 나오는 가운데 일단 2018-19시즌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갔지만, 새로 영입된 벤 포스터에게 주전 자리를 넘겨주고 백업 키퍼로서 뛰는 중이다. 그렇게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FA컵 결승 맨시티전에서 선발출전했으나, 6대0으로 패하며 눈물겹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은퇴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2019년 6월 27일에 1년 더 재계약했다.

2019-20시즌 팀은 다시 챔피언십으로 강등되었고, 고메스는 재계약 없이 팀을 떠났다. 이후 브라질 ESPN과의 인터뷰에서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4. 국가대표 경력

2003년 골드컵 명단에 포함되며 처음 차출되었다. 골드컵이 북중미 대회라서 그런지 남미팀인 브라질은 23세 이하 대표팀을 내보냈고, 고메스가 명단에 든 것. 그리고 주전으로 뛰며 5경기를 소화했다.

그러나 성인팀에서는 지다라는 레전드급 골키퍼의 존재와 백업키퍼 마르쿠스의 존재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있었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 최종명단에서도 주전은 지다가 일찌감치 맡아둔 가운데 호제리우 세니줄리우 세자르에게 밀려 제외된다. 그러다 월드컵 이후 둥가가 취임하며 간헐적으로 뽑히더니, 토트넘 초기의 맹활약으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종엔트리에 선발되었다. 하지만 줄리우 세자르라는 강력한 경쟁자때문에 벤치만 뎁혔다.

이후에는 국대에 차출되지 못했다. 그나마 왓포드 이적 후 폼이 올랐지만 고메스 본인의 나이도 있고 해서 알리송을 비롯한 젊은 골키퍼들이 우선 차출되었다.

5. 우승

  • 크루제이루 EC (2002 ~ 2004)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 2003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 2003 , 2004
    • 코파 두 브라질 : 2003
    • 수페르코파 두 브라질 : 2003
  • PSV 에인트호번 (2004 ~ 2008)
    • 에레디비시 : 2004-05 , 2005-06 , 2006-07 , 2007-08
    • KNBV 베이커 : 2004-05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2003 ~ 2011)
    • 2003 골드컵 : 준우승
    •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우승
    •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우승

6. 여담

한국선수들과 묘하게 접점이 많다. PSV 시절에는 박지성, 이영표와 한솥밥을 먹었고, 토트넘으로 이적한 후에는 이영표와 잠깐동안 같이 뛰었다.[4] 그리고 고메스가 왓포드에 입단하기 불과 몇 주 전까지 왓포드에는 박주영이 임대로 뛰고있었다. #[5]

토트넘시절 실수 컴필레이션. 일단 직접 보자. 물론 2009-10 시즌엔 엄청난 수의 슈퍼 세이브로 팀의 챔스권 진출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으나, 축구계 명언이 말해주듯 사람들은 열백번의 선방보다 1번의 실책을 더 기억한다.[6]는 것이다.

페페 레이나와도 묘하게 유사한데, 둘 다 평상시에는 안정적인 선방을 보여주지만 간간이 보여주는 예능으로 저평가를 받는다. 다만 둘의 차이점이라면 고메스보다 레이나가 전반적인 수준이 더 높다는 점. 잠시 활약하고 망했다가 간신히 되살아난 고메스와 달리 레이나는 골든 글러브를 3번이나 받을 정도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1] 실제 발음기호는 [ˈɡõmiʃ\]여서 발음기호 그대로 읽으면 '공미시' 가 맞는 발음이다. o위에 ̃가 오고 뒤에 ʃ가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포르투갈어 표기법에서 b,p,m,f,v 뒤에 오는 -es는 포르투갈 본토, 브라질 상관없이 -에스로 표기하므로 표기법상으로는 '고메스'가 맞다.[2] 당시만 해도 브라질 축구선수=다재다능한 필드 플레이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때문에 유럽 리그에서 활약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브라질 출신 선수가 골키퍼라면 의아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AC 밀란에서 맹활약한 지다를 제외하면 브라질 국가대표급 골키퍼들은 유럽 리그가 아닌 자국 리그나 남미 리그에서 뛰는 등 스타 골키퍼라고 할 선수가 마땅히 없었으며, 훗날 월드클래스로 성장한 줄리우 세자르도 당시엔 풋내기 유망주에 불과했다. 이러한 인식은 지다줄리우 세자르를 거치며 조금씩 개선되어 지에구 아우베스네투같이 유럽 빅 리그에서 눈에 띄는 모습을 보이는 골키퍼들이 꾸준히 나타났고, 2010년대 후반에는 알리송에데르송 모라에스라는 월드클래스 브라질리언 골키퍼가 등장하는 등 이러한 인식은 사라진 추세다.[3] 박지성이영표가 뛰던 그 시기 맞다.[4] 고메스가 2008년 6월 27일에 토트넘에 입단했고, 약 2달 뒤 이영표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떠났다.[5] 박지성의 결혼식때에도 참석해준 바 있다고 알려져있었으나 고메스가 아니라 당시 박지성과 에브라의 에이전트인 루카 바셰리니이다.[6] 토트넘 다큐멘터리에서 미셸 봄골키퍼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