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4 12:22:31

염가칭

1. 개요2. 생애


廉可偁
(? ~ ?)

1. 개요

고려의 인물. 제2차 여요전쟁 때 거란군에 잡혀 40년을 포로 생활을 하다 가까스로 귀국한다.

2. 생애

봉성현(경기도 파주시) 출신. 삼한공신 염형명의 손자로 군기감의 승(종5품)을 지낸 염위의 아들이다. 염가칭은 현종 원년(1010) 환위공자(環衛公子)의 군역에 충원된다. 환위(環衛, 대궐 사방을 호위)라는 표현으로 유추하면 개경 만월대의 동서남북 궁궐문을 지키는 군역이었을 것이다. 곧 제2차 여요전쟁 때 왕이 몽진하니 성 안에 소요가 일고, 염가칭은 양친을 모시고 남쪽 고향으로 피난을 결정한다. 현종 2년(1011) 1월 거란군은 개경을 점령했고 염가칭 일가는 피난 도중 거란군에 잡혀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

문종 9년(1055) 1월 아들 하나만을 데리고 도망쳐나와 40여년 만에 고국 땅을 밟는다. 이듬해 염가칭은 문종의 배려로 조상의 집과 농토를 돌려받는다.
가칭은 공신의 후손으로 20대(丁年)에 포로로 잡혀 번토(蕃土)에 처자식을 버리고, 오직 아들 하나만을 이끌고 백발 노인이 되어 돌아왔으니 참으로 가엾도다. 대대로 내려온 밭과 집을 줄 수 있도록 하라.[1]
문종이 내린 제서(制書)


[1] 可偁功臣苗裔, 丁年被俘, 棄蕃土妻兒, 惟携一子, 皓首而歸, 深可憐憫. 可給舊業田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