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1-21 03:39:10

오인식

파일:오인식.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오병길(吳丙吉)
본관 군위 오씨[1]
출생 1896년 9월 9일
제주목 대정군 좌면 하원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사망 1938년 6월 7일[2]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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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오병윤은 그의 8촌 삼종제(三從弟)이다.

2. 생애

1896년 9월 9일 제주목 대정군 좌면 하원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서 아버지 오영화(吳永花, 1865 ~ 1957. 12. 27)와 어머니 진주 강씨 강갑생(姜甲生, 1864 ~ 1957. 4. 6) 사이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오영화는 대정군 유향소(留鄕所)의 별감(別監)을 지냈다.

그는 1918년 10월 7일 좌면 도순리(현 서귀포시 도순동)에 살던 이종창(李宗昌) 등이 하원리로 들어와 하원리 주민들에게 법정사항일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자, 이웃 주민인 양봉(梁鳳) 등과 함께 가담하였다.

그를 비롯한 사람들은 일제히 화승총곤봉 등을 휴대하고 승려 강창규의 지휘 아래 전선과 전신주를 절단하였으며, 중문면에 있던 경찰관 주재소를 불태우고 일본인을 구타하였다.

얼마 뒤 이로 인해 체포되었고, 그해 11월 27일 65명의 동지들과 함께 기소되어 목포형무소에 구금되었다. 그러다가 1919년 2월 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벌금 30엔을 선고받았다. 이때 벌금을 완납할 수 없을 시에는 30일간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조항이 걸려 있었는데, 그는 벌금을 납부치 않아 결국 노역장에 유치되었다.

유치 기간이 끝난 뒤에는 은거하다가 1938년 6월 7일 별세하였다.

201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1] 말파 17세 식(植) 항렬.[2] 음력 5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