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a1a1a1><colcolor=#222> 오토 바이닝거 Otto Weininger | |
출생 | 1880년 4월 3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 | |
사망 | 1903년 10월 4일 (향년 23세)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 | |
직업 | 철학자 |
분야 | 철학, 논리, 심리학, 천재, 젠더, 종교철학 |
성향 | 관념론, 칸트 윤리학 |
학력 | 빈 대학교 (1902년 박사) |
종교 | 유대교 → 개신교 |
[clearfix]
1. 개요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16세에 첫 논문을 발표했으며 22세에 빈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자신의 유일한 대표작 성과 성격(Sex and Character)를 발표한 이후 '천재가 아니라면 죽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 뒤 23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2. 생애
유대인 금세공사인 아버지 레오폴트 바이닝거(Leopold Weininger)와 헝가리 유대인 출신인 어머니 아델하이트(Adelheid) 사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다방면에서 특출났으며, 16세 때는 특히 어원론적 관점에서 호메로스에 나오는 그리스 숙어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1898년 7월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통과하고 빈 대학에 입학해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자연과학 수업과 의학 수업도 함께 들었다. 18세에 바이닝거는 그리스어, 라틴어, 불어, 영어에 능통했고, 나중에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도 구사했다. 또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와 헨리크 입센을 읽기 위해 스웨덴어와 노르웨이어도 배웠다. 그러나 그는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웠으며, 아웃사이더나 이단자로 여겨졌다.
1901년 초여름에 그는 나중에 박사 학위 논문의 초고가 된 <에로스와 프시케. 생물학적.심리학적 연구(Eros und Psyche. Eine biologisch-psychologische Studie)>를 빈 학술원에 제출한다. 이 논문을 보충해 빈 대학의 요들 교수와 뮐러 교수에게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해서 1902년 7월 21일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몇 달 동안 집중 작업을 한 후인 1903년 6월에 ≪성과 성격- 원칙적 연구(Geschlecht und Charakter?eine prinzipielle Untersuchung)≫가 빈의 브라우뮐러 출판사에서 출판된다. 이 연구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새로운 빛’을 비추려는 것이었다. 이 책은 바이닝거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가장 결정적인 세 개의 장을 확장한 것으로, 그 안에 반유대주의 경향, 여성혐오주의(Misogynie) 경향, 능숙하게 다루지 못한 형이상학이 거침없이 전개되었다.
이 책은 거부 반응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센세이션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라이프치히 대학 교수였으며 ≪여성의 생리학적 허약함(Uber den physiologischen Schwachsinn des Weibes)≫의 저자였던 파울 율리우스 뫼비우스는 바이닝거가 자기 책을 표절했다고 공격했다. 완전히 실망하고 회의에 차서 괴로워하던 바이닝거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바이닝거는 10월 3일까지 5일간 부모님 집에서 보낸다. 그는 아버지에게 낡아빠진 안경집을 드리며 작별 인사를 하고, ‘슈바르츠슈파니어슈트라세(Schwarzspanierstrasse)’의 베토벤이 숨을 거둔 집에 방 하나를 얻었다. 그 집으로 10월 3일 저녁에 들어가 밤에 아버지와 동생 리하르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10월 4일 아침. 심장에 총을 쏜 채 방에서 발견되었고, 오전 11시에 빈의 어느 종합병원에서 사망했다.
3. 성과 성격
바이닝거의 대표적 저작은 1903년 6월에 출판된 ≪성과 성격- 원칙적 연구(Geschlecht und Charakter?eine prinzipielle Untersuchung)≫로 꼽힌다.3.1. 남성성과 여성성
저서 <<성과 성격(Sex and Character)>>에서 바이닝거는 모든 인간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혼합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주장하며, 이 주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관점에서 남성성은 능동적이고 생산적이며, 의식적이고 도덕/논리적이다. 반면에 여성성은 수동적이고 비생산적이며, 비의식적이고 비도덕/비논리적이다. 바이닝거는 여성의 해방(emancipation)은 레즈비언과 같이 남성적인 여성(masculine women)에게서만 일어날 수 있으며, 그 이외의 여성의 생활은 성적인 기능, 즉 매춘부로서의 행위와 모친으로서의 제품 양 측면으로 소비된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성의 의무는 천재(genius)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신을 향한)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위해 육체적 측면의 섹슈얼리티(sexuality)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한다.그의 책에서 중요한 부분은 천재의 본성에 관한 것인데, 여기서 바이닝거는 천재는 수학이나 음악같은 특정분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보편적인 천재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천재 안에는 모든것이 이미 존재하며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자질은 모든 사람에게 어느정도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3.2. 유대교성 vs 기독교성
동일한 책의 다른 장에서 바이닝거는 자신이 1902년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음을 밝힌다. 그는 전형적인 유대인은 여성적이며,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로서의 영혼(soul)이 없고 비종교적이며 선과 악의 감각이 없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는 가장높은 신념의 가장높은 표현(the highest expression of the highest faith)으로 표현되고, 유대교는 비겁함의 극한(the extreme of cowardliness)으로 표현된다. 바이닝거는 현대사회의 타락을 여성성(곧, 유대교성)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그의 계산에 따르면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어느정도 여성성(곧, 유대교성)을 드러내고 있었다.3.3. 시대정신에 대한 비판
바이닝거는 당시의 시대정신(Zeitgeist)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우리의 시대는, 가장 유대교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여성적이다. 예술은 유머에만 집착한다. 국가와 정의의 이해가 없으며 속기쉬운 아나키즘이 유행한다. 집단주의의 시대이고, 역사학에는 엄밀함이 결여되었으며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시대이다. 경제학과 공학을 제외하면 역사와 삶, 과학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못하며, 천재는 미치광이로 치부당하고, 그러면서도 위대한 철학자나 예술가는 단 한명도 탄생하지 않는 시대이다. 에로티시즘을 최초로 자랑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그것은 로마인과 그리스인이 Bacchanalia 축제에서 했듯이 자신을 잊기위함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을 재발견했다는 환상을 갖기 위해서이다."[1]
4. 비트겐슈타인에 미친 영향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학창시절에 <<성과 성격>>에 깊은감명을 받았으며, 나중에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중에 하나로 꼽았다. 비트겐슈타인은 바이닝거를 '위대한 천재(a great genius)'라고 회상했다. 다만 비트겐슈타인의 바이닝거에 대한 깊은 찬사는, 바이닝거의 입장에 대한 근본적인 불일치와 연결되어있다. 그는 G.E.Moore에게 쓴 편지에서 "바이닝거의 의견에 동의할 필요도 없고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의 위대함은 우리가 반대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의 위대한 실수가 그의 위대함입니다." 같은 편지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성과 성격>> 전체에 부정기호(negation sign)을 붙인다면, 중요한 진실을 얻는다고 썼다.바이닝거가 제시한 현대문명의 타락이라는 주제나, 완전한 자의 천재에 대한 의무라는 주제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에서 자주 발견되고 있다.
5. 바이닝거와 나치즘
나치 선전부는 바이닝거의 반유대주의적 서술중 일부를 발췌해서 선동에 사용했는데, 이는 히틀러가 바이닝거의 스승 디트리히 에카르트(Dietrich Eckart)에게 전해들은 바이닝거에 대한 회상에 근거한다 : "최근에 한 유대인이 자살했는데, 그가 유대인들은 사람들의 타락 위에서 번영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작 바이닝거는 <<성과 성격>>에서 그의 반유대주의가 유대인 인종이나 각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것이 아님을 명확히 밝혔다 : "내가 유대교성을 논의의 주제로 고른것은, 그들이 드러내는 심각함과 논의하기 까다로움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명확히 짚고넘어갈 것이 있다. 내가 유대교성(Judaism)을 언급할 때 그것은 인종이나 사람, 신념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의미하는 것은 어느 사람에게나 존재할 수 있는 어떤 마음의 경향, 심리적 기질이며, 그걸 유대교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저 그 기질이 현대사회에선 유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 이러한 맥락에서 이 시대의 가장 맹렬한 반유대주의자들은 오히려 유대인들이라는 사실이 설명된다."
[1] Weininger 2005, p. 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