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헬리 앙투안 드 투넝스(Orélie-Antoine de Tounens: 1825-1878)
1. 개요
여러 마푸체 롱코(지도자)들의 추대를 얻어 내서 아라우카니아와 파타고니아의 왕(Rey)이 되었음을 선언했던 프랑스인 모험가. 자신을 왕으로 추대한 선주민족들에게는 이들의 영토를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것을, 프랑스인들에게는 훌륭한 이민지를 만들어 줄 것을 약속하였으나 칠레 정부의 방해로 실패했다. 직계 후손은 없으나 현재도 계승자임을 주장하는 이들이 아라우카니아와 파타고니아 왕국의 왕위 계승자임을 주장하며 선주민 권리 옹호 운동에 동참 중이다.2. 왕이 되기까지
오헬리는 1825년 5월 12일 목요일에 프랑스 도르도뉴 오뜨포흐에서 농민 가정의 아홉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1850년 8월 1일에 툴루즈에서 법학 학위를 얻어 다음 해에 페리괴에서 소송대리인 일을 시작하였다. [1]프리메이슨 그랜드 오리엔트 로지 회원이었던 오헬리는 프랑스가 캐나다와 루이지애나를 잃어버린 손해를 벌충할 새로운 프랑스(Nouvelle France)를 만들 계획을 이야기했고 자신의 재산을 긁어모으고 가족의 도움도 받아서 1858년에 칠레로 가는 배에 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업 활동을 하다 1860년에 마푸체의 영토를 향한 여정에 올랐다. [2]
3. 왕이 되다
당시 마푸체 니돌 롱코(Ñidol Lonko: 대 지도자) 마닐 웨누(Mañil Wenu)는 에스파냐와 마푸체가 맺은 협정을 무시하고 계속 비오비오(Biobío) 강 남쪽 마푸체의 영토를 온갖 방법으로 침탈해 오는 칠레인들에 맞설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에스파냐의 왕이 칠레를 다시 지배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에스파냐는 이미 1844년에 칠레의 독립을 공식 인정한 상태였다.그 상황에서 오헬리 앙투안 드 투넝스는 프랑스 1852년 헌법을 모델로 하여 자신의 아라우카니아 왕국을 위한 헌법을 만들었다. 수도는 앙골(Angol)로 하기로 하였다. 1860년 11월 17일에는 마닐의 동의를 받은 상태에서 큰 집회에서 임금이 되었음을 선언했다. 그리고 1861년 말에는 캉굴로(Cangulo), 트라이겐(Traiguen), 케체레구아스(Quechereguas)를 돌아다니며 여러 마푸체 집단의 승인을 받는 절차를 거쳤으며, 파타고니아 쪽 원주민들의 승인도 받았으며 그 지역 역시 자신의 왕국의 영토임을 선언하였다. 이때 오헬리를 지원한 인물들은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던 마닐을 제외하고도 그 직계 후계자였던 궨테콜(Guentecol), 마닐의 아들 클라팡(Külapang), 어쩌면 마닐 만큼이나 중요했을 유력자 멜린(Melín) 등이 있었다.
마푸체의 구전 전승에 따르면 이 시기의 오헬리는 마푸체처럼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마푸체의 복장을 입고, 마푸체식 음식을 먹으며 빈번히 마푸체 지도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4. 포로가 되고 추방된 왕
그 뒤 오헬리는 앙골에 가서 그곳의 지도자 트린트레(Trintre)에게도 승인을 받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 길에 칠레인 민병대의 습격을 받아 포로가 된 뒤 로스 앙헬레스(Los Angeles) 시의 감옥에 갇혔다. 오헬리는 감옥에서 이질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하고 심각한 탈모 증세까지 겪었으며 의사조차 만나지 못하게 하는 칠레 당국의 학대에 항의했다. 원주민들에게 반란 선동을 했다는 칠레 정부의 비난 역시 오헬리는 당치도 않은 이야기로 여겼다. 마푸체 영토(스페인어로 "아라우카니아: Araucanía")는 분명 칠레 영토가 아니니 칠레 법을 적용하는 것은 만민법 위반이며, 자신은 오히려 무장 투쟁을 요구하는 마푸체들을 말리며 평화 교섭을 시도하려 했다 하였다. 그곳이 칠레 영토라면 어째서 국경(Frontera)라는 말을 쓰고 있는지, 어째서 대다수 지역에서 칠레 법이 적용되지 않는지, 어째서 칠레 정부가 마푸체들을 상대로 한 전쟁 계획을 세우는지를 따졌다. 거기다 오헬리는 입헌군주국가를 세운다는 계획을 이미 한참 전에 신문 지면과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등을 통해 칠레 당국에 알렸는데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지금 와서 이러느냐는 항의도 했다.칠레 정부는 프랑스 세력이 오헬리를 통해 남아메리카에 개입할 가능성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을 죽이는 것도 부담이 되었던지라 결국 오헬리를 머리가 이상한 사람 취급하여 정신병원으로 보냈고, 그뒤 오헬리는 결국 프랑스 정부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로 돌아가 자신이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을 세우며 겪은 고난과 마푸체와 칠레 분쟁에 대한 이야기를 1863년에 책으로 펴냈다.
5. 귀환한 왕이 다시 탈출하다
몇 년이 지난 뒤 오헬리는 다시 마푸체의 땅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마닐의 아들 킬라판을 중심으로 한 저항세력이 칠레의 마푸체 영토 정복을 지휘하는 코르넬리오 사아베드라(Cornelio Saavedra) 대령의 군대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그때 오헬리가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당시 마푸체 기병 일부가 총을 갖고 있었던 것이 나폴레옹 3세의 은밀한 지원을 받은 오헬리의 도움 덕분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확실한 것은 오헬리가 나폴레옹 3세가 1870년 보불전쟁의 패배로 실각한 뒤에 사아베드라 대령이 자신의 목을 노리는 상황에서 칠레를 탈출했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전하는 마푸체 구전 전승은 사아베드라가 오헬리의 목에 막대한 현상금을 걸었으나 오헬리를 왕으로 존중하던 마푸체들은 사아베드라를 돕지 않고 살리나스 그란데스(Salinas Grandes) 지역을 지배하던 또 다른 마푸체 대 지도자 칼프쿠라(Kalfükura)의 영역으로 오헬리를 피신시켜 주었다는 것이다.6. 왕이 세상을 떠나다
프랑스로 돌아간 오헬리는 마푸체들의 땅을 프랑스와 영국에 팔아넘길 생각이 아니었냐는 세간의 비난과 자신을 미친 사람으로 모는 칠레 측 인사들의 비방을 반박하며 계속 권토중래를 꿈꾸었다. 1874년에는 3차 시도에서는 아라우카니아 파타고니아 왕국을 위한 동전 제작장치까지 가지고 나섰으나 선박 조사에 걸려 아르헨티나에 수감되어 엄격한 감시를 받다가 추방당했다. 1876년에는 아르헨티나 쪽에 상륙하였으나 병에 걸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수술을 받았으며 건강도 크게 악화되었다. 당시 오헬리가 이질에 걸린 원인은 칠레인 프리메이슨 단원들이 몰래 먹인 독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그 뒤 프랑스로 돌아간 오헬리는 1878년에 후손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뒤로도 앙투안의 왕국을 물려받은 이들은 존재하여 현재까지도 마푸체가 당했고, 당하고 있는 부당한 처우를 널리 알리고, 그 활동을 위한 연락망 역시 구축하고 있다. 현재 왕위 계승자는 2018년에 프레데릭 1세로 즉위한 문장학자 프레데릭 뤼(Frédéric Luz)이다.7. 평가
오헬리 앙투안은 살아있던 당시에도 미친 사람이다, 원주민을 팔아서 프랑스의 식민지를 만들려 했다는 등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미친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또 너무나 멀쩡하게 행동했고, 마푸체 땅을 프랑스에 넘긴다는 이야기도 극구 부정하며 열심히 마푸체를 옹호한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오헬리의 헌법은 마푸체 전원에게 보통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이라 당시 마푸체는 커녕 칠레인 대다수에게도 투표권을 주지 않던 칠레 헌법보다도 더 민주적이며 원주민 친화적인 것이었다.문제는 그 꿈을 구현할 자금도 군사력도 너무나 달렸다는 것이다. 나폴레옹 3세의 비밀 지원설이 사실이라면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꺾은 것도 결정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현실은 시궁창인데도 꿈과 의지를 끝까지 버리지 않은 오헬리를 현재까지도 존중하는 이들이 많이 있는지 프랑스 시골에 있는 오헬리의 무덤에는 지금도 계속 칠레에서 추모객이 찾아와 대지의 힘을 전한다는 뜻으로 돌을 하나씩 놓아두고 있는 듯하다.
[1] Jérôme Louis, « Antoine de Tounens (1825-1878) : un conquistador français devenu roi d’Araucanie et de Patagonie », Textures, 27 | 2023, 2번 문단 mis en ligne le 02 juin 2023, consulté le 17 juin 2023, URL : https://publications-prairial.fr/textures/index.php?id=426 ,[2] Jérôme Louis, « Antoine de Tounens (1825-1878) : un conquistador français devenu roi d’Araucanie et de Patagonie », 3번 문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