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테드 창의 단편소설. 단편집 <숨>에 처음 수록되었다.2. 줄거리
창조설이 진실인 세계에서, 교회 고고학자인 주인공 도로시아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이야기. 이 지구는 창조의 과학적 증거를 찾을 수 있는 세상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세는 방법으로 추적하면 8912년 전이 가장 오래된 나이테며, 이는 8912년 전에 지구가 창조되었으며 그 때의 나무는 이미 자란 상태로 창조되었기에 최초의 나무들은 바깥쪽에는 나이테가 없고 안쪽에만 나이테가 있다. 비슷하게 성장판이 없는 조개나 뼈 등이 발견되며, 배꼽이 없는 최초의 인간들의 미라도 발견된다. 이렇듯 창조의 증거가 발견되기에 기독교의 존재감이 막강한 것으로 보이며, 과학과 종교가 심하게 반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과학적 방법론으로 창조의 증거를 찾을 수 있으니 교회가 딱히 반과학적인 스탠스를 취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그 이유로 보이며, 이렇기에 전세계에서 많은 태초의 인간들이 발견되자 아담과 이브만이 신이 직접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이야기는 비유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도 보여준다. 실제로 주인공도 교회 고고학자며, 과거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신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함으로 인식했다. 다만 세속적 과학자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모든 과학자가 종교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도로시아가 자기 사촌 로즈마리가 최근에 태초 유물을 샀다며 사슴의 다리뼈를 보여주는데, 로즈마리의 남편 알프레드는 진짜 유물이라면 그렇게 쌌을 리 없다며 부정한다. 도로시아는 사슴 뼈에 성장판이 닫혀서 생긴 흔적이 없음을 확인하여, 이 뼈는 성체 상태로 만들어졌기에 태초 유물이 맞다고 인증한다. 도로시아가 유물을 어디서 샀냐고 묻는데, 로즈마리는 박물관 기프트샵에서 샀으며, 다양한 종류의 유물을 싸게 팔고 있었으며 전복 유물이 있어서 신기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태초 전복 유물은 발견된 적이 단 한 번이며, 알타 캘리포니아 대학의 산타 로자 섬 발굴인데, 대학에서 유물을 땡처리할 리가 없으니 수상하게 여긴 도로시아가 조사에 나선다.
기프트샵 주인은 기부를 받았을 뿐이라며 기부자의 신상 정보를 알려준다. 마틴 오스본이라는 사람이었는데, 직접 만난 적은 없고 집주소도 모르며, 우체통 주소만 안다고 밝혔다. 도로시아는 기프트샵 주인의 이름으로 해당 우체국으로 전자 메일그램을 보내 네가 기부한 유물이 장물이라는 의심 때문에 반송하겠다는 메시지를 전송하고, 우체통에서 소포를 가져가는 사람을 잡기로 한다. 이 작전은 성공했는데, 마틴 오스본은 가명이었고 유물을 보낸 사람은 윌헬미나 맥컬로라는 소녀로, 오클랜드 소재 알타 캘리포니아 대학교 자연철학[1] 박물관장인 네이선 맥컬로 박사의 딸이었다. 관장의 딸이었기에 의심을 사지 않고 박물관 유물들을 빼돌릴 수 있었던 것. 왜 이런 일을 했냐는 추궁에 윌헬미나는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사람들의 믿음을 더 확고하고 신을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곧 사람들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논문이 발표될 것이고, 그렇기에 이런 유물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면서. 무슨 논문이냐고 도로시아가 묻자, 윌헬미나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리뷰 요청이 온 천문학 논문이 있는데, 아버지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하고, 자세히 알고 싶으면 아버지랑 얘기하라면서 집주소를 알려준다.
다음 날 도로시아는 맥컬로네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네이선이 윌헬미나에게 화내는 모습을 본다. 딸이 말한 당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가 뭐냐고 도로시아가 묻지만, 네이선은 이건 가족의 개인적인 일이기에 당신 알 바가 아니라고 쏘아붙인다. 그러자 도로시아는 입장 바꿔 생각하면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 당신 같으면 그런 설명으로 만족하고 박물관에 보고 안 할 수 있겠냐고 반박하고, 네이선은 크게 불편해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어차피 발표될 논문을 보여주라는 아내의 설득에 논문 내용을 공유한다. <자연 철학>이라는 학술지의 논문을 리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논문의 제목은 "태양과 에테르의 상대적 운동에 관하여 (On the Relative Motion of the Sun and the Luminiferous Aether)"이다. 마이컬슨-몰리 실험의 결과 에테르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고 빛의 속도가 모든 관성기준계에서 동일하다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현실 세계와 달리, 이 소설 속의 세계에서는 에테르의 존재가 실험적으로 관찰되고 그 속도도 관측할 수 있다. 관측 결과 태양계에는 일정한 에테르 바람이 불고 있는데,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딱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결과지만 아서 로슨이라는 천문학자는 태양계에 에테르 바람이 부는 게 아니라 태양계 자체가 정지해 있는 에테르에 대해서 움직인다고 해석한다. 도로시아는 사막에 바람이 불면 바람이 움직이고 사막이 가만히 있는 거지, 공기는 가만히 있는데 사막이 움직인다는 해석이 말이 되냐고 바로 반박하지만, 네이선은 일단 끝까지 들어보라고 한다. 로슨의 가설에 따르면 에테르에 대해 정지해 있는 항성이 있을 것이며, 그 항성은 절대 공간의 기준인 에테르에 대해 정지해 있으므로 절대 정지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항성들은 있었지만 완벽히 에테르를 기준으로 정지 상태인 항성은 없었는데, 그러다가 로슨은 에리다누스 별자리의 58 에리다니라는 항성의 속도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초속 몇천 마일 정도의 속도로 지구에게 다가왔다가 멀어졌다가를 반복하는 이상한 항성이었던 것이다. 다른 관측소와 정확히 대조해본 결과, 이 항성은 24시간을 주기로 속도가 변하고 있고, 로슨은 24시간을 58 에리다니가 원형 궤도를 돌고 있다고 추측한다. 도로시아는 그러면 더 무거운 천체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하자, 네이선은 그렇게 운동하는 천체는 중력에 의한 공전일 리 없다고 답한다. 여태까지 우리의 천체 역학에 대한 모든 지식을 부정한다면서. 로슨의 가설은 58 에리다니가 우리가 관측하기 너무 작은 천체, 즉 지구 크기의 행성을 24시간 주기로 공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58 에리다니가 이렇게 공전하는 이유는 행성에게 24시간의 밤-낮 주기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즉 58 에리다니는 천동설적인 태양계를 이루며, 58 에리다니가 공전하고 있는 이 행성은 에테르에 대해서 정지 상태이며 이 행성에서, 그리고 오직 이 행성에서만 빛의 속도가 모든 방향에서 동일하다는 것이 로슨의 가설이다. 이 행성에 생명이 있는지 알 방법은 없지만 로슨은 생명이 있다고 추측하며, 이 행성의 생명이 신이 이 우주를 창조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태양이 24시간 주기로 행성을 공전하는 기적이 존재하는 행성, 절대적 정지 상태에 있는 이 행성이야말로 신이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창조한 특별한 행성이 아니겠냐는 것.
로슨은 추가로 지구의 인간이 존재하는 가설로 세 가지를 꼽는데, 1) 진짜를 만들기 위한 연습 창조였다, 2) 의도치 않은 부작용으로 58 에리다니의 행성을 창조할 때 창조되었다, 3) 사실 우리가 진짜고 58 에리다니의 행성은 연습이거나 부작용이었다, 세 번째 가설은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한다.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 주의 관심이 있는 곳이라면 항성이 행성을 공전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행성이 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 아니겠냐는 것. 즉 지구는 어찌 됐든 의도치 않는 창조물로서, 신은 존재하지만 우리에게는 딱히 관심이 없다는 핵폭탄급 결론이 도출되는 논문이었던 것이다.
물론 로슨도 스스로 인정했다시피 추측이 많은 논문이지만, 설득력 있는 이론이며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네이선은 말한다. 대표적인 언어학의 난제로 전 세계의 언어가 몇 천년의 시간 만에 이토록 달라졌냐는 것이 있었다. 태초의 인간들이 하나의 언어를 말하고 있었다면, 전세계의 언어에서 어느 정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기엔 관련 없는 언어들이 존재하기에, 태초의 인간들이 쓰던 언어가 여럿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대체 왜 신이 태초에 인간들에게 여러 언어를 쓰게 만들었는지가 난제였으나, 애초에 우리가 신의 관심 밖이었다면 난제가 해결된다. 신은 태초의 인간들에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줬지만 언어를 내려주진 않았고, 세계 각지의 태초 인간들은 독립적으로 언어를 개발했기에, 세계의 언어가 이토록 다른 것이다.
이어서 네이선은 자신은 이 논문을 리젝하고 싶었지만 리젝할 명분이 없으며, 과학자로서의 양심이 이 논문을 게재 승인토록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계획에 우리가 아예 없었다면 어찌 되는 거냐면서 거의 울음을 터뜨리고, 도로시아가 위로하려 하자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소리친다. 네이선의 부인은 우리에게 윌헬미나보다 10년 정도 오빠였던 마틴이라는 아들이 있었으며, 인플루엔자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네이선이 이 큰 아픔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이것도 신의 계획 안에 있었다는 믿음 때문이었는데, 애초에 지구라는 행성부터 신의 관심 밖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버틸 수가 없었던 것. 자신의 태양 연구에서 신의 지문을 찾아내는 것과 같은 성취를 느꼈는데 모든 항성에서 이런 파동이 발견될 것이라면서, 과학은 목적을 잃었다고 한탄한다.
도로시아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으나, 스스로도 발굴 작업의 의미에 대해 흔들림이 생겨 일을 쉬게 된다. 태초 시절의 창을 발굴해 그 이후의 기술 발전 수준을 파악해, 하느님이 인간 지식에 대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유추하는 작업이었으나, 신이 우리에 대한 의도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집중이 안 되었던 것.
시간이 지난 후, 생각이 정리된 도로시아는 자신의 다짐을 기도로 올린다. 도로시아는 자신이 평생 연구를 하며 느낀 성취감을 하느님의 뜻과 자신을 창조했던 의지에 부응했기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만약에 자신이 하느님의 의도 밖어였다면 자신이 느낀 성취감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 느낀 것이라 한다. 자신은 하느님께서 내려다보시던 그렇지 않던 다시 발굴 작업에 참여하고, 우주가 창조된 것이 인간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며. 이 여정이 자신의 목적이며, 하느님이 이 목적을 내게 내려줬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아멘.
3. 해석
신앙과 과학에 대한 다양한 화두를 던지는 소설. 현실의 과학사는 종교가 인간이 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지위를 주창하고, 과학이 신이나 기적, 지구/인간의 특별함을 찾지 못하며 우리가 우연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펼쳐 온 대립의 역사가 있다. 교회의 천동설/과학의 지동설이 그러했고, 교회의 창조설/과학의 진화론이 그러했다. 다만 이 소설에서는 신이 존재한다는 과학적 증거 (적어도 지구가 8천 년 이내로 창조되었다는 증거)가 존재하는데,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증거도 존재해, 어찌 보면 더 절망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현실의 과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도 않지만 반증하지도 않기에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과학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신은 우리 행성에 관심이 없고 신의 관심을 받는 기적이 존재하는 특별한 행성은 우주 저 멀리에 따로 있다. 이랬을 때의 신앙은 어때야 하며, 삶의 의미는 어떻게 찾아야 하냐는 것이 주제다. 마지막 기도에서의 결론은, 삶의 의미는 신이 있더라도 신에게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이다.[1] 과학의 옛 이름. 이 세계에서는 자연 철학이라는 말이 아직 많이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