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13 19:13:51

완 공략전

완공략전
(宛攻略戰)
Assault of Wan
시기 기원전 341년
장소 한나라령 완
원인 진 국군 영거량이 제나라의 패권체제에 도전
교전국 진秦한韓
제齊
송宋
지휘관 진 우서장 손빈한군 지휘관 ???

제 구원군 총사령관 전반
제 구원군 부장 광장

송군 지휘관 ???
병력 진군 10만 9천한 완성수비군 4만6천
제군 11만7천
송군 1만7천

총합 18만
피해 총합 약 2만 5천총합 약 2만 1천
결과 진군 패배, 한제동맹군 완 방위 성공
영향 제나라 주도 패권질서 공고화

1. 개요2. 배경
2.1. 한의 사정2.2. 진의 사정
3. 전투의 전개
3.1. 진군의 진격로3.2. 제와 한의 대응3.3. 완 공방전 진의 맹공3.4. 완 전투3.5. 손빈의 유인책, 그러나...
4. 결과
4.1. 영거량의 한탄4.2. 종전협상4.3. 회맹 그리고 의심의 싹
5. 영향
5.1. 진나라 황금기의 종료5.2. 한나라 내정인가 외교인가5.3. 제나라 완성된 패권 그리고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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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逐鹿中原)은 시작되었다!에 나오는 가공의 전쟁. 이전 남양대전으로 남방의 대국 초를 무릎 꿇리고 패자체제를 확고히한 제의 전인제는 남은 또다른 도전자 진나라를 주시하였고, 마침 진나라의 팽창에 위기를 느끼고 있던 한과 혼인동맹을 맻고 진에 대응하기로 하였다. 한과 제가 동맹을 맻는다는 소식을 듣게된 진국군 영거량은 이이상 시간을 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체 제의 패권을 인정하게 되는 구도를 깨고자 대군을 일으켜 한나라령 완을 침공하니 진, 한, 제, 송 4국이 완성을 두고 일대 격전을 펼치게 되었다.

2. 배경

2.1. 한의 사정

남양대전으로 초가 제에게 무릎꿇음으로써 남방은 안전해 졌지만, 한나라는 아직 안심할수 없었다. 서쪽에 한을 호시탐탐 노리는 진나라가 건재하고 특히 영거량의 치세하에 진은 눈에 띄게 국력을 팽창시키고 세력을 뻗쳐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한소후 한무는 전통적인 맹방 제나라에게 정식으로 혼인 동맹을 맻을것을 요청하였고, 제나라는 이를 받아들여 패자 전인제의 자식 중 적당한 이를 골라 보내기로 합의하였다.

2.2. 진의 사정

한편 한과 제가 혼인 동맹을 맻는다는 소식을 듣게된 영거량은 이것을 두고보게되면 진나라는 영원히 중원으로 나올수 없다는 생각에 두국가가 정식으로 혼인동맹을 맻기전에 선수를 치기로 결심하였다. 당시 진나라는 서쪽 농서에서 강족과 충돌하고 있었는데 영거량은 과감하게 공자 영건에게 강족의 일을 맡기고 우서장 손빈에게 동진을 명하였다..

3. 전투의 전개

3.1. 진군의 진격로

동진하기로 결심한 영거량에게 손빈이 어느 방면으로 진격할지 묻자 영거량은 무관을 나가 완을 치겠다고 하였지만, 손빈은 적도 그것을 알고 대비하고 있을테니 어렵지만 적에게 더욱 큰 타격을 줄수있는 진격로가 두개 있다고 진언하였다. 하나는 함곡관을 나가 민지를 거쳐 의양을 치는 공격로로 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한을 흔들 수 있지만, 의양에서 발이 묶일 수 있으며 다른 나라의 원군이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황하를 도강하여 위나라령 하동을 치는 공격로로 태항산맥의 존재 때문에 위를 도울 원군이 제때 도착하기 어렵다는 점과 진의 교두보화가 쉽지만, 이부근은 위가 이전부터 진을 대비해 요새화를 준비하였고, 설령 성공하더라도 북방의 조선과 국경을 맞데게 되는 부담이 있었다. 영거량은 손빈의 조언을 듣고 아무리봐도 무관쪽이 무난한데 이런 어려운 진격로를 추천하 이유가 무엇이냐 묻자 손빈은 무관쪽이 무난한 만큼 동맹이 많은 제와 한이 더욱 유리하고 현재 형세는 진이 불리하니 개인적으로 좀더 추세를 지켜보고 싶다고 답하였다.
영거량은 이를 지켜만보고 있으면 자신이 죽을때까지 기회가 오지 않을것이라 여겼고 자신이 살아생전 성과를 보고싶기에 전쟁을 물리지 않았고 손빈이 언급한 두개의 진격로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고 도박수적이다며 안전한 무관방면을 골랐다.[1] 이에 손빈은 영거량의 뜻을 받들어 준비에 들어가니 진나라는 약 11만 대군[2][3]을 소집하여 무관을 나와 한나라령 완으로 진격하였다.

3.2. 제와 한의 대응

전부터 진나라를 예의주시하던 제나라는 진나라의 대군이 무관을 나와 진격하고 있다는 첩보를 듣자 즉시 전반과 광장에게 11만7천의 대군을 맡겨 완으로 급파하였고, 동맹국 송에도 파병을 요청하여 송이 1만 7천을 보내었다. 한편 당사자인 한나라도 진의 진격을 알고 대비에 들어간다. 다행히 완성은 이전부터 진의 공격에 대비하여 방비를[4] 잘해놓았고 기존의 수비군 3만 4천에 급히 1만 2천을 더하여 보내니 4만6천이 완성에서 진군을 맞이하여 수성에 들어갔다.

3.3. 완 공방전 진의 맹공

이윽고 손빈이 이끄는 진군이 완성을 겹겹히 에워싸 포위를 하였지만 생각보다 요새화가 잘되어있는 완성에 손빈은 정면으로 싸우면 진군의 손해도 높을것이라 여겨 한측을 도발하여 적장이 뛰쳐나오게 유인책을 펼쳤다. 그러나 한군 지휘관은 진군에게 받은 모욕보다 성을 포위한 진군의 수에 겁이 질려 나오지 않으니 이때문에 한군의 사기가 떨어졌다. 손빈은 적이 나오지 않을것을 보고 단숨에 적장이 겁을 먹고있다 판단하고 즉시 공세에 들어가니 진군이 노도와 같은 기세로 완성을 공격하였다. 분명 요새화가 잘되어있는 성이었지만 장수가 겁에 질린 상태였기에 한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고 손빈의 지휘하에 진군은 성벽을 올라 한군을 도륙하였다. 그렇게 거의 성이 낙성되어가던 와중 멀리서 거대한 먼지와 제,송 양국의 군기가 보이니 전반이 지휘하는 연합군 13만이 전장에 도착하였다.

3.4. 완 전투

손빈은 생각보다 적이 빨리온것에 아쉬워 하면서도 즉시 포위를 풀고 야전형태로 진을 변경하였다. 전반 역시 진에 맞서 전열 정비하고 진을 펼치니 손빈과 전반이라는 두 명장이 지휘하는 대군이 벌판에서 일전을 펼치게 되었다. 그러나 진군은 완을 빨리 함락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공성전을 벌힌 직후라 지쳐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손빈이 전반에 맞서는 사이 광장이 별동대로 진군의 진형을 휘저으며 활약하니 전투의 기세는 연합군쪽으로 기울어졌다.

3.5. 손빈의 유인책, 그러나...

손빈은 진군의 피해가 커지자 이이상의 싸움은 무리라고 판단 망설임없이 퇴각을 명하였다. 그러나 손빈도 그냥 당해줄수 없다듯 퇴각하면서 미리 봐두었던 매복 지점에 선발대를 보내어 대기하게 하고 연합군을 유인하였다.[5] 이에 한군측 지휘관이 퇴각하는 진군의 추격하려 하였지만, 질서정연하게 퇴각하는 진군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 전반과 광장이 말렸고 연합군이 추격하지 않자 손빈은 와해된 병력을 수습하고 무관으로 퇴각하였다. 그렇게 양측의 전투는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혔다.

4. 결과

4.1. 영거량의 한탄

손빈이 귀환하자 영거량은 패전의 원인이 무엇이냐 묻자 손빈은 첫째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고 둘째로 너무 졸속으로 일을 치룬것이 원인이라 답하였다. 이에 영거량은 그것은 자신도 알고있는 사실이며 자신이 알고 싶은것은 왜 나는 안되냐는 것이라 말하였다.
이미 모든 것이 무너졌다는 건 알고 있어!
내가 살아있는 동안 진은 제의 패권을 인정해야겠지!
효산 동쪽으로는 눈길도 줄 수 없고 수많은 도전을 감내해야겠지!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세인들은 서쪽에 진이 있고 동쪽에 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분명 출발은 비슷했을텐데 지금 이 결과는 무엇이냐!
왜 나는 안 되는데 그 남자는 되는 것이냐!
이것이 하늘의 뜻이냐! 나는 하늘에 거스르고 그 남자는 하늘을 따른 것이냐!
영거량의 울분에 찬 외침에 손빈은 아무말도 해줄수 없었다. 이윽고 영거량이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며 분기를 누르고 손빈에게 무관의 방비를 맡겨 자신은 함양으로 귀환하였다.

4.2. 종전협상

그리고 얼마 안있어 제나라가 사신으로 순우곤을 파견하여 전후협상에 들어갔지만, 그자리에서 순우곤은 영거량에게 다음 회맹에 참석하라는 조건만을 내세웠다. 영거량은 분명 패전의 대가로 이것저것 요구할것이라 여겼는데, 수상할만큼 수수한 요구에 의문을 품었지만, 그속을 헤아리지는 못하였다. 영거량의 예측대로 제나라는 당연히 진나라에 요구할것이 많았지만, 패자체계의 위계질서 각인과 진의 동남진공로 차단 그리고 인질을 천하에 공인하기 위하여 회맹참석 요구만을 내밀었다.
그리고 동시에 초나라에 혜시를 파견해 진나라군의 초나라령 무단 월경에 대하여 묻자, 초왕 웅상은 진나라가 무단으로 자신의 영역을 넘어갔다며 진과의 관계를 부정하였다. 그러나 이미 진초관계를 대략적으로라도 파악하고있던 제나라에서는 이를 그냥 넘어가주지 않고, 초가 입은 피해를 보상하는 명목하에 무관밖 진나라령 단일대를 초에게 넘기겠다고 답하였다. 웅상은 이것이 진과 초의 관계를 갈라놓으려는 제의 술수임을 파악하고 거절하였지만, 제나라의 강권에 떠밀려 결국 수락하였다.

4.3. 회맹 그리고 의심의 싹

그렇게 다음해인 기원전 340년 규구에서 열린 회맹에서 만국이 보는 앞에 진나라에 대한 처분이 내려졌다. 먼저 영거량 직계의 진나라 공족[6]을 임치에 인질로 보내고, 무관 일대 이남의, 단읍을 포함한 모든 진나라령을 넘기라는 요구가 내려졌다. 어느정도 예상한 사안들이었기에 영거량은 군말없이 받아들였지만, 패전의 대가로 내놓은 단 지역을 한이 아닌 초에게 넘기라는 말을 듣자 혼란에 빠졌다. 한편으로는 오랜 우호관계이자 사돈인 초나라에 대한 신뢰와 다른 한편으로 정말로 초가 자신들을 버리고 제의 휘하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렇게 진초동맹의 균열은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5. 영향

5.1. 진나라 황금기의 종료

진나라는 그동안 영거량이 진행해오던 개혁에 제동이 걸렸다. 패전을 명분으로 그동안 억눌러져 있던 귀족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 묵가 진나라지부 수장인 북돈의 파직과 함양에서의 추방을 요청하였다.[7] 귀족들의 요청을 물리치지 못한 영거량은 영건에게 파직과 추방사실 그리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죄를 전했다. 그러나 북돈은 자신만 추방되고 남은 묵가인들은 그대로 보존되었기에 괜찮다며 혹 자신에게 볼일이 있으면 상읍으로 오라고 도리어 영거량을 위로하고 함양에서 추방되었다.
귀족들은 북독이 추방되자 다음으로 자신들의 주도하에 복구사업을 추진하려 하였지만, 영거량이 그것만큼은 안된며 물리치고 중앙주도의 복구사업을 진행하였다.[8]

5.2. 한나라 내정인가 외교인가

제나라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 한나라였지만, 이것이 상층부 노선 갈등으로 이어졌다. 술치를 기반으로 귀족중심의 한을 재편하고 자강을 노리는 상방 신불해와 한나라가 아무리 자강을 하더라도 한계가 있으니 주변국과의 외교를 중시하자는 대부 공중치의 대립이었다. 그러나 한나라 명문가 장가의 일원 아경 장개지[9]가 신불해의 편을 듬으로서 한은 내부 자강을 노리는 노선으로 가게되었다.[10]

5.3. 제나라 완성된 패권 그리고 한계

서쪽의 대국 진마저 물리친 제나라는 이제 명실상부한 중원 패권을 쥐게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만방에 알리기 위하여 전인제는 산골짜기 동네 파에까지 초대장을 보내었고 파왕이 이에 응하여 회맹에 처음으로 참여하였다. 그런데 회맹이 거의 끝나갈 무렵 파왕이 주천자가 없는것[11]에 만국의 국군들이 보는 자리에서 의문을 표하고 본의아니게 이 패자체제의 한계[12]를 인식시키게 되었다.[13] 전인제는 회맹자리에서는 아무일없다듯 진행하였지만, 회맹이 종료되고 자신의 집무실 그것도 측근들이 보는 자리에서 분노를 토해내었다. 그러나 이내 머리가 냉정해지면서 대책마련에 들어가고, 여러 조언을 얻기 위하여 광장의 스승[14]이 굉장한 유학자라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초대하게 된다.


[1] 단 무관쪽은 중간에 초나라령 오를 지나야 하는데 초나라와 사돈을 맻고 우호 관계였기에 미리 사절을 보내 양해를 구했고 초나라도 이에 응하였다.[2] 정확하게는 10만 9천[3] 메타적으로 숙련도 98로 진나라 역대 최정예 군대다.[4] 방비도가 98이다 사실상 요새급[5] 원역사 손빈이 유명해진 마릉전투와 비슷한 양상이었다.[6] 이때 뽑힌것이 영거량의 장남 영사의 동생 영질이다.[7] 패장인 손빈은 사실상 군사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라 잘못 건드리면 오히려 귀족들이 위험해지기에 만만한 묵가인 북돈을 노렸다.[8] 이전 토지조사때도 귀족들이 수작을 부린것을 기억하고 있고 또 중앙주도로 진행시 많은 예산이 필요하지만 묵가인들이 만든 묵거덕에 세수는 넉넉하였다.[9] 사적으로 신불해의 제자다.[10] 배경적으로도 이제 제나라 주도하의 국제질서가 완성되었으니 내정을할 절호의 시기이기도 했다.[11] 전인제의 주도하에 주천자가 회맹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여러공작을 펼쳤다. 주나라에 엄청난 뇌물을 보내고 천자가 정무에 관심이 없도록 유도하는 등등[12] 결국 명분상으로 패자는 주천자의 신하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13] 그리고 진과 초는 이 한계를 이용하여 전인제 스스로 패자체제를 종결시키는 낙양사건을 계획한다.[14] 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