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black><colcolor=#fff> 왕평 | |
| 본명 | 이응호(李應鎬) |
| 출생 | 1908년 3월 15일 |
| 경상북도 영천군 영천읍 성내동 (現 경상북도 영천시 성내동) | |
| 사망 | 1940년 |
| 학력 | 영천보통학교 (졸업) |
1. 개요
대한민국의 예술가.2. 생애
1908년 3월 15일, 경상북도 영천군 영천읍 성내동(現 경상북도 영천시 성내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응호(李應鎬), 아명은 두희(斗熙).어머니는 왕평이 5세가 되던 해에 사망하였고,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영천보통학교 졸업 후 1924년 현철이 설립한 조선배우학교의 1기생으로 들어가 이금룡, 김아부 등과 함께 연기 수업을 받았다.
3. 활동
1929년 창립된 극단 조선연극사의 단원으로 지두한, 강홍식, 신불출, 천한수, 임서방, 이경설, 이애리수, 전옥, 나품심 등과 활동했으며, 천한수, 임서방, 신불출 등과 함께 극본을 썼다. 이후 연극시장, 연극호 등의 극본 작가로 활동했다. 이 시기 그가 작사한 황성의 적[1]은 1930년경 조선연극사의 순회 공연 중 개성 만월대에서 느낀 감회를 작곡가 전수린이 먼저 멜로디를 만들고 왕평이 작사한 가요로, 무대의 명배우 겸 인기가수인 이애리수가 불러 히트했다.이 가요는 조선인에 의해 창작된 본격적인 트로트로서, 1932년 4월 빅타레코드로 출반되었고, 5만 장 판매라는 최고의 히트를 기록했다.
1932년, 여배우이자 가수인 이경설과 함께 포리돌레코드 조선 지점 초대 문예부장을 맡았다.
1933년, 인기 극반 항구의 일야를 발표했다. 같은 제목의 악극을 왕평이 대본을 쓰고 전옥과 주연을 맡아 출연하기도 했다.
왕평의 전체 작품 수는 도합 195편 정도며 이 중 유행가 장르가 115편, 서정소곡 3편, 째즈송 3편, 민요, 속요, 신민요 33편, 합창과 행진곡 5편, 극과 극영화 대본 30편, 넌센스 21편, 스켓치와 만담 5편 등이 있다. 왕평이 가사를 쓴 대표작으로는 황성의 적, 님 그리워 타는 가슴(1932), 항구의 일야(1933), 선우일선의 신민요 조선팔경가(1936) 등이 있다.
1930년대에는 악극 활동을 많이 했고, 또한 넌센스, 스켓치, 만담 등의 많은 대본을 쓰고 출연했다. 넌센스 음반을 함께 내며 호흡을 맞췄던 나품심과는 1933년 후반부터 부부로 동거하였고, 1937년까지 부부 만담가로 이름을 날렸다.
1938년, 성봉영화원에 참여해 나그네(이규환 감독, 1937), 군용열차(서광제 감독, 1938)의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으로 출연했다. 풍채가 좋은 그는 듬직한 오빠 역을 잘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40년, 연극 남매를 공연하던 도중 무대에서 뇌일혈로 사망했다.
4. 기타
- 1941년, 왕평을 추모하는 노래 오호라 왕평(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남인수 노래)이 발표되었다.
[1] 이후 '황성옛터'로 불렸다.